1900년대초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으로 있으면서 고종의 대외밀서 송부를 저지하는 등 친일 노선으로 일관했던 미국인 듀람 W 스티븐스(1851~1908)가 당시 일본 정부와 비밀리에 계약을 맺고 일본 외교고문직도 겸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본의 외교문서가 처음으로 발굴됐다. 이는 일본이 을사조약 이전부터 한국의 외교권을 기만적으로 통제하려 했음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자료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22일 "대한제국 외교고문이었던 스티븐스가 실제로는 일본공사관 외국인공관원직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밝혀주는 이중계약서 초안과 계약약정서를 최근 일본 외교사료관의 문서철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의 '3羽鳥' 스티븐스
주미 일본공사관 외국인공관원은 일본의 대미 외교 담당 외교고문에 해당한다. 한 교수는 "이 문서들은 스티븐스가 그간 알려져 있었듯 단지 형식적으로만 한국을 위해 일했던 일본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금전상ㆍ신분상으로 일본의 '관리'임을 문서적으로 보장받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일본이 을사조약(1905년 11월) 이전부터 실질적으로 한국의 외교를 통제했음을 보여주는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동북아역사재단 후원으로 이번 연구를 진행해 왔다.
주일 미국영사관원 출신인 스티븐스는 1882년 일본 외무대신 비서관으로 임명되면서 일본과 연을 맺었다. 그는 대한제국 외교고문으로 있다 1908년 3월 미국으로 돌아간 뒤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일본의 보호정치를 찬양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3월23일 장인환, 전명운 의사에게 사살될 때까지 평생 일본을 위해 헌신해 일본 외무성이 고용한 외국인 고문 '3우조(羽鳥)'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친일적인 인물이다.
스티븐스는 1900년 4월1일부터 1905년 3월29일까지 주미 일본공사관 외국인공관원 계약을 맺었는데, 이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인 1904년 12월부터 대한제국 외국인고문직을 맡았다. 지금까지 스티븐스는 주미 일본공사관 외국인공관원직을 그만두고 대한제국 외국인고문직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1905, 6년 두 차례 이중계약
이번에 발굴된 문서는 모두 2종으로 1905년 4월 작성된 이중계약서 초안과, 1906년 7월께 작성된 약정서다. 1905년 문서는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고무라 외무대신과 스티븐스 사이의 계약관계를 명시하고 있다. 고무라는 이 문서에서 '(당시 주미 일본공사였던) 고무라와 스티븐스 사이에 체결된 약정(1900~1905년 계약을 의미)은 소정의 기간 만료된 후 다시 명치 38년(1905년) 4월1일부터 동 43년(1910년) 3월31일까지 5년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한다'고 계약 연장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 문서에는 일본 정부가 고무라와 스티븐스의 갱신계약 약정일인 '명치 38년 3월30일'을 '명치 37년(1904년) 11월1일'로 수정했다가 다시 원안대로 하라는 표시가 남아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종전 계약이 만료되기 전에 스티븐스와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한국의 외교고문이 아니라 일본의 관리라는 인식을 심어줘 충성심을 유발하려 했음을 의미하지만, 이 사실이 공개될 경우의 국제적 비난을 의식해 이를 취소한 것으로 해석된다. 스티븐스는 이중계약을 맺음으로써 한국측에서 월급 1,000엔을, 일본측에서 월급 700엔을 받았는데, 이는 당시 주한 외국인 외교고문의 평균적인 월급 300~400엔의 5~6배에 해당하는 파격적인 액수다.
1906년의 문서는 일본 외무대신 하야시와 스티븐스가 서면으로 작성한 약정서로 '명치 38년(1905년) 3월31일 고무라와 스티븐스 사이에 구두로 체결된 약정을 좌기(1905년 이중계약서 내용)대로'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일본은 이 문서를 통해 스티븐스가 일본 외교관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있다.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의 허구성
이 문서들은 한국의 외교권을 통제하기 위해 유례없이 외국인과 이중계약을 서슴지 않았던 당시 일본 외교의 기만성을 폭로할 뿐 아니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사료로서 가치도 높다.
일본은 1905년 2월22일 시마네현이 고시를 통해 독도 영유권을 공시한 사실을 근거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당시 외교권이 없어 반박할 수 없었다며 이 고시의 불법성을 주장하는 한국에 대해 일본측은 "1904년 8월22일 맺은 '제1차 한일협약'은 일본본부가 추천한 외국인 1명을 외교고문으로서 외부에 고용한다고 규정한데 불과하며, 일본정부에서 추천한 외국인(스티븐스)은 미국인이어서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간섭한 일이 없다"는 논리로 맞섰다.
그러나 이번 문서의 발굴로 당시 스티븐스가 일본 관리라는 신분이 밝혀짐으로써 이 논리의 허구성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한 교수는 "시마네 현 공시를 전후한 시기에 스티븐스의 한국 외교고문으로서의 활동을 면밀히 분석하게 됨으로써 일본의 독도 강제편입 논리의 부당성을 입증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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