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주"정부의 청년실업 대책에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고 구태의연하다"고 나무랐다. 청와대 국가고용전략회의에 올라온 정부 대책이 천편일률인 것을 그렇게 지적했다고 한다."한번도 일자리 걱정을 안 해본 엘리트들이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대통령의 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 대통령이 관료 집단의'엘리트주의'를 질책한 것은 언뜻 오바마 미 대통령의 포퓰리즘 공세를 닮았다. 오바마는 금융개혁과 경제회복의 부진으로 민심이 등돌리는 조짐이 뚜렷하자, 관료와 정치 집단 등 특권 엘리트 세력이 대중의 삶을 돌보지 않는 탓이라고 몰아 붙였다. 대중영합적 발언으로 국정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정치ㆍ경제 엘리트 집단에 맞서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좋은 포퓰리즘, 스마트 포퓰리즘이라는 평가도 많다.
오바마ㆍ이명박의 엘리트 비판
오바마는 지난 달, 새해 국정 연설에서"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국정과제"라고 선언했다. 실업률이 10%를 넘고 실질실업률은 17%에 이르러 2,600만 명이 백수로 놀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왜 포퓰리즘 공세인가. '실업대란'의 절박함과 고통을 모르는 엘리트 집단이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개혁에 걸림돌임을 강조,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전략이라는 풀이다.
그런 기대는 빗나가지 않은 모습이다. 오바마의 국정 연설 이후 실업 문제를 깊이 다룬 글이 보수와 진보를 가림 없이 언론에 잇달아 실렸다. 특히 여러 학자와 논객이 노스이스턴대 노동연구소가 지난해 4분기 소득계층별 실업률을 조사한 결과를 충격적이라며 인용했다.
이에 따르면, 최상위 15만 달러 이상 소득계층의 실업률은 3.2%, 10만 달러 이상 계층은 4%에 불과하다. 그 아래 계층의 실업률은 갈수록 높아져 2만 달러 이하 소득계층은 19.1%, 최하위 1만2,500달러 미만 계층은 31%나 된다. 엘리트 계층은 일자리 걱정이 별로 없으니 대중의 실업대란에 진정한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런 진단도 다분히 포퓰리즘에 기운 감이 있다. 그러나 엘리트 집단을 비롯한 사회 전체가 실업, 특히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경고는 누구든 새겨 들을 만하다. 그 가운데, 고급 오피니언 전문지 애틀랜틱(The Atlantic) 3월호에서 대공황 이래 실업대란에 관한 연구를 정리한 글은 "실업은 개인과 가정, 사회를 좀먹는 가장 무서운 역병"이라고 규정한다.
미국과 일본의 여러 연구에 의하면, 청년실업은 개인의 자존과 정체성을 해치는 등 성격과 인생을 바꾼다. 그 뿐 아니라 소득균형과 결혼, 평균수명, 질병 등에서 깊은 후유증을 남겨 정치, 문화, 사회 전체를 왜곡시킨다. 20대에 장기 실업을 경험한 세대는 중년에 이르러 과도한 음주 경향과 우울증, 스트레스 성향이 두드러진다. 정체성과 성(性)역할 인식에도 장애가 많고, 성취욕과 신분상승 욕구도 떨어진다. 불황기 사회에 진출한 세대의 평생소득이 앞뒤 호황기 세대보다 평균 10% 적다는 연구도 있다.
청년실업 절박함 인식을
물론 청소년기에 대공황을 겪은 세대는 적응력이 강하고 가족적이라는 연구도 있다. 우리 사회처럼 가정과 가족이 청년실업의 고통을 덜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와 사회구조가 비슷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에 대학을 나온 30대 10명 중 6명이 직업과 관련한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다는 연구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반응도 엇갈릴 듯하다. 정부 대책이란 게 늘 뻔하다고 탄식하던 이들은 옳은 말이라고 반길 만하다. 반대로 대통령이 뭘 하든 못마땅한 이들은"엉뚱하게 누굴 탓하느냐"고 비웃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인상비평에 매달리다 보면, 청년실업의 심각성은 끝내 뒷전에 밀리기 십상이다. 중요한 것은'실업대란'의 절박함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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