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하원의원이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을 상원회의실에서 자신의 지팡이로 흠씬 두들겨 패는 사건이 벌어졌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하원의원은 그 후 지지자들로부터 새 지팡이 수십개를 선물로 받았다. 시사주간 타임이 전하는 150여년 전 미 의회의 모습이다. 민주, 공화 양당이 정책을 놓고 논쟁하고 때로 당파적으로 흐르는 것은 과거에도 흔히 있었다. 그러나 대립이 관리 가능하고 언제든지 타협의 여지가 있었다는 점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의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민주당의 에반 바이 상원의원이 의회에 대한 염증을 토로하며 중간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의회의 극단적 대립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건강보험개혁, 녹색에너지 법안, 재정적자 감축 등 굵직한 현안들이 여야의 정쟁에 막혀 한치도 앞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2월 7,870억달러의 경기부양법안이 오바마 행정부 취임 이후 양당이 초당적으로 처리한 유일한 법안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행정부가 공화당의 반대에 발목을 잡혀 정책을 펴지 못하고, 이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잃어 정책 추진이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것이 타임의 지적이다.
의회 저질 정치는 클린턴 행정부 때 공화당이 주도
야당이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사사건건 집권당에 반대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수법은 빌 클린턴 행정부 들어서 노골화했다. 야당이었던 공화당은 권력을 되찾기 위해 행정부를 마비시킬 정도로 정쟁을 첨예하게 끌고 가는 전략을 선택했다. 유권자들은 국정 마비의 책임을 결국 집권당에 묻는다는 심리를 간파한 것이다. 이는 1994년 중간선거에서 뉴트 깅리치의 ‘보수주의 혁명’이 대성공을 거두며 의회권력을 빼앗아 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깅리치와 톰 딜레이, 트렌트 로트 상원의원 등이 이런 전략을 주도한 공화당의 핵심인물이었다. 공화당은 국민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만 골몰했다. 결론 없는 논쟁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표결을 막기 위해 연좌농성까지 불사한 것이 클린턴 집권 2년 동안의 의회의 모습이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의회 1년은 이런 점에서 클린턴의 2년과 흡사하다. 국민의 의회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이는 고스란히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졌다. 취임 초 80%에 육박하던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1년 만에 40%대로 주저앉았다.
필리버스터 남용이 문제
공화당이 의회를 무력화하는 최대의 무기는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이다. 수적우세를 이용한 다수당의 물리적 표결 강행을 막기 위해 소수당에 부여한 법적 권한이지만, 필리버스터가 의사진행 과정에서 실제 동원된 경우는 과거에는 거의 없었다. 타임에 따르면 미 건국부터 남북전쟁까지 필리버스터는 10년에 한번 나올 정도였고, 60년대 말까지도 주요 법안에 필리버스터가 사용된 경우는 10%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 들어서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캐서린 피스크, 어윈 체머린스키 등 학자들은 “필리버스터가 최후의 수단이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일상적인 것이 돼버렸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1월 매사추세츠 상원 보궐선거에서 패배로 민주당의 ‘슈퍼 60석’이 무너지면서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는 더욱 위력을 발휘하게 됐다.
결국은 돈과 후보 지명권
의회가 파당적으로 흐르는 것은 의원들이 당론을 추종하는 거수기로 전락한 것이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경제와 같은 민생현안은 물론, 낙태 인권 환경과 같은 민감한 이념 문제에서도 당의 입장에 구애받지 않고 초당적으로 표결에 나서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설득으로 건보개혁안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공화당의 척 그래슬리(아이오와) 상원의원이 중간선거 당내 경선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당의 위협에 굴복해 건보개혁 결사 반대로 돌아선 것이 단적인 예다.
노선을 넘나들던 의원들이 당론에 꼼짝 못하게 된 것은 선거자금과 당의 후보 지명을 의식한 탓이 크다. 의원 개개인의 선거 자금 후원금으로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선거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정당으로부터 지원이 없으면 사실상 정치생명을 내놓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2000년 하원 선거에서 의원 한사람 당 85만달러를 쓰면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2008년 선거에서는 당선에 필요한 액수가 140만달러로 늘어났다. 2008년 대선 비용은 2000년보다 무려 4배이상 폭증했다. 후보 지명에 대한 당의 입김도 세졌다. 유권자의 성향에 맞춰 선거구를 책정하는 ‘게리맨더링’ 때문이다. 후보 지명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당의 미움을 무릅쓰고 독자행동을 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 오바마 "통합의 정치" 메아리 없는 외침
공화당 하원의원 연례 정책연수 참석(1월 29일), 민주 공화 양당의원 백악관 초청 슈퍼볼 중계 관람(2월 7일), 재정적자 해소를 위한 초당적 위원회 설립(18일), 양당 지도부 건강보험개혁 공개 토론회 예정(25일)...
지난달 20일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선거 충격의 패배로 상원 '슈퍼 60석'을 상실한 이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통합의 정치'를 위해 행한 정치적 시도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취임 1년을 뒤돌아보며 "미국 통합 공약을 실천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통합의 정치'에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지난 1년간 지지를 철회한 중도성향 유권자를 되돌림으로써 11월 중간선거 승리의 교두보를 만들려는 듯하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 경제 장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는 미국인들은 점점 더 당파적으로 변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갤럽의 최근 조사결과를 보면 민주당 지지자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88%에 이른 반면, 공화당 지지자의 경우 23%에 그쳤다. 차이가 65%포인트로 집권1년 지난 대통령으로는 역대 최고치다.
오바마 대통령이 총력을 기울이는 건보개혁 작업은 양당 지지자들이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이슈다. 25일로 예정된 양당 지도부 건보개혁 토론에서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21일 AP통신에"미국인들은 건보법안 통과를 바라지 않는다"며 타협 가능성을 사전 차단했다. 따라서 케이블TV를 통해 전국에 중계될 이날 토론회에서 오히려'당파 정치'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민주당 출신 주지사들은 "대통령이 이제 그만 공화당과 토론하고 국민들을 직접 설득하라"고 촉구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성과 없는 제스처만의 초당정치 노력은 국민들에게는 또 다른 당파싸움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는 특히 건보개혁 같이 논란이 거센 이슈는 뒤로 미루고 경제에 집중해야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선전을 기약할 수 있다는 논의가 무성하다.
공화당은 물론 소속 민주당으로부터도 외면 받는 오바마의 초당정치 행보가 결실을 맺기는 이래저래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 美 당파정치 원인분석 제각각
미 민주 공화 양당의 대립으로 의회정치가 갈수록 격화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원인 분석은 제 각각이다. 제도적 모순이라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대통령 등 정치리더의 자질 문제가 원인이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올해 임기를 끝으로 인디애나주 상원의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에반 베이 의원은 21일 뉴욕타임스에 ‘내가 상원의원을 떠나는 이유’이라는 기고문에서 ‘의회 기능장애’의 주요 이유로 “공격적인 당파성, 유연성 없는 이념 고집,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게리맨더링, 끊임없는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 등을 꼽았다. 특히 게리맨더링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현 미국 의회 대립의 원초적 원인 중 하나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탄소 배출권 등 주요 법안들이 상원에 정체해 있는 것과 관련, “단지 상원의원 41석(공화당)이 법안을 사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게리맨더링 덕분에 많은 상원 의원들이 경쟁과 무관하게 자리를 보전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대표성 문제로 연결된다. 인구 50만 명인 와이오밍주 상원의원과 인구 3,700만 명인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이 동등한 영향력을 갖는 현실에서 보듯, 현재 미국 전체 인구의 약 11% 를 대표하는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앞세워 법안을 막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임 대통령들이 법안통과에 성공했다는 점을 들어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다시 말해 의회 분열은 현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매릴랜드 대학 프란시스 리 교수의 연구결과, 당초 20~30%가 당파적 성향을 보이던 특정 법안도 대통령이 특정 정당에 가세하면 당파성은 65%까지 치솟는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1일 보도했다.
양당간 갈등에 대한 해법도 크게 엇갈린다. 막무가내식 필리버스터를 막고, 게리맨더링을 방지하는 제도개혁을 주장하는 쪽과 대통령이 야당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강력한 권한을 발휘하든지, 아니면 깨끗이 승복하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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