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직장까지 거리 관계로 무궁화호 열차를 주로 이용한다. 출근길 열차 안에서 1시간을 지내야 하는데 신문이나 책을 꺼내 읽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내가 이용하는 노선에는 4년제 대학교만 3개교가 있어 늘 대학생들을 접하는데, 최근 들어 젊은이들의 열차 풍속도가 바뀐 것을 실감한다.
책보다 게임ㆍ동영상 즐겨
6, 7년 전까지만 해도 책을 읽는 대학생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객실에서 책 읽는 젊은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어쩌다 책을 읽고 있는 대학생 차림의 젊은이를 보면 반가울 정도다. 다들 휴대전화로 문자를 날리고 있거나, 노트북 등으로 게임이나 동영상 즐기기에 바쁘다.
얼마 전 번역ㆍ출간된 나가미네 시게토시의 <독서 국민의 탄생> 은 메이지 시대(1868~1912) 일본이 활자 미디어를 읽는 습관이 몸에 밴 ‘독서 국민’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메이지 초기 사람들의 탈것 가운데 가장 친근한 것은 인력거였다. 당시 도로 사정은 극히 나빴다. 게다가 인력거 바퀴는 나무 테에 철판을 덧씌워 진동이 심했다. 그다지 승차감이 좋은 탈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인력거를 새로운 독서의 장으로 활용했다. 독서>
인력거라는 차내 공간은 승객 1, 2명과 인력거꾼으로 이루어진 닫힌 공간이다. 메이지 초기 일본인의 독서 방식은 음독(音讀)이었으므로 승객이 신문을 읽으면 듣는 사람은 인력거꾼이다. 인력거꾼 중에는 승객에게 읽어주기를 적극적으로 부탁하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손님이 읽는 것을 귀로 들으면서 끌고 가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끌고 가는 도중 질문하고, 이해가 되면 정중히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식이었다.
인력거꾼이란 먹고 살기 위해 흘러 들어가는 막장과도 같은 직업이었다. 하지만 당시 기록을 보면 사회 최하층인 인력거꾼이 일하는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신문잡지를 일상적으로 읽을 정도로 독서 습관이 모든 일본 국민의 몸에 배어 있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메이지 5년(1872)에 처음 개통되어 메이지 20~30년대에 전국으로 확대된 철도는 일본 국민의 독서의 장으로 십분 활용됐다. 문제는 전통적 음독 습관이었다. 기차 안에서 음독을 하면 주변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 개중에 외설적인 글을 큰소리로 읽어 사람들을 배꼽 빠지게 만드는 자도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음독은 공공성의 논리에 막혀 사라지고 새로운 독서법인 묵독(黙讀)이 정착되기에 이른다.
100년 전 일본의 독서 국민 탄생 과정을 읽으면서 그 무렵 우리 모습을 그려본다. 하지만 우리는 100년 전 독서 문화를 거론하기도 민망하다. 일본어를 국어로 상용하다가 한글을 본격적으로 쓴 지 이제 겨우 60여 년 되었으니 말이다. 일본이 엄청난 물량의 텍스트를 국민들에게 제공하던 1세기 전, 우리에게는 언문일치의 모국어 텍스트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의 독서 국민은 언제 탄생했을까? 1970,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7080세대가 진지한 책 읽기에 익숙했던 첫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운동을 위한 이론학습 과정을 통해 체계적인 독서 훈련을 쌓았으며, 계간지와 사회과학 서적의 홍수 속에서 ‘삶의 길은 책에 있음’을 몸으로 실감했다.
뒤늦은 독서 습관과 단절
이들은 학창시절 ‘도서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를 다 읽어내고 말리라’고 다짐하거나, 바로 그렇게 사는 선배와 친구들을 존경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 경험이 있는 세대다. 하지만 뒤늦게 형성된 독서 습관은 바야흐로 단절 직전 상황이다. 젊은 세대는 바야흐로 비(非)독서 국민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시들어가는 활자 문화 속에 어렵사리 등장했던 독서 인구마저 속절없이 멸종되고 마는 것인가.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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