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은 3년 전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초청을 받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푸틴 총리가 비공식적으로 '러시아 투자환경 개선 및 자원 개발 사업 등에 대한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국내 기업으로는 LG가 유일하게 초대받은 것이다.
푸틴 총리는 이날 구 회장에게 "우리는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며 "스빠씨버(고맙다)"라는 말을 여러 번 언급했다. 푸틴은 왜 그토록 구 회장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을까.
한국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들은 4년 전까지 핀란드, 독일 등을 통해 상품을 우회 수출했다. 당시 푸틴 총리는 "러시아 국경 세관에서 발생하는 불법통관을 근절하겠다"며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경로로 반입되는 백색통관으로 투명화하겠다"고 선언했다.
LG전자는 푸틴의 투명화 정책에 앞장섰고, "완제품 수출보다는 러시아에 직접 투자를 강화하겠다"며 외국계 제조업체 최초로 모스크바주 루자군에 공장(사진)을 설립했다.
외국기업 최초로 생활가전 현지생산
빠른 유통경로로 시장점유율 늘려 LG전자 루자공장은 모스크바 시내에서 70㎞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2006년 총 1억5,000만달러를 들여 지은 공장의 규모는 50만㎡(15만평). AㆍB동에는 생산라인, 부품창고, 임시 보관함을 운영하고 있다.
LG전자는 TV, 모니터, 냉장고, 세탁기 등 현지생산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으며, 작은 부품부터 완제품 포장까지 100% 현지화를 했다.
안드레이 로브리노프(42) 현장 소장은 "TV 생산라인은 대형(32,42인치)과 소형(22, 26인치)으로 나뉘어졌고, 1시간에 한 라인에서 LCD, PDP를 각각 500대씩 생산하고 있다"며 "올해는 라인을 2개정도 더 증설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냉장고 라인으로 이동해 용접공정을 지켜봤다. 러시아는 환경규제가 한국의 10배 정도 까다로워 공장 관리자들을 원료부터 제품 생산 과정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직원들은 "공장 내 인체 유해시설이 전혀 없어 안심해도 된다"며 마크스나 안정 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자율 복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냉장고 생산량은 공장 설립 당시 한 달에 7,000대에서 현재 4만대로 늘었다. LG전자는 러시아가 소형 아파트 형태의 주거 환경이 많은 점을 착안해 집안 면적을 덜 차지하는 높이 185㎝, 190㎝의 늘씬한 '콤비냉장고'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겨울이 6개월'이란 계절적 특수성을 감안, 매일 장보기 불편한 주부들 위해 냉동실을 아랫칸에 적용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세탁기의 한달 생산량은 5만대를 넘었다.
지난해 루자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한 TV는 100만대, 세탁기는 80만대, 냉장고 35만대, 모니터는 300만대다. 올 해는 전년대비 판매량이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성과에는 러시아인의 독특한 생활습관을 최대한 배려해준 현지화 정책이 성공한 데 기인했다.
정병주 가전제조 담당 냉장고생산실 부장은 "러시아인은 감기 걸리거나 조금만 아파도 출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의사 소견서만 있으면 출근을 안 해도 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대신, 자율 경쟁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고, '해당 제품이 시장점유율 1위 하면 연봉도 최고로 대우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LG전자 세탁기를 비롯한 몇몇 가전제품은 러시아ㆍ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철저한 현지화로 러시아 CIS에서 No1 도약
LG전자가 한국 협력업체와 함께 안정된 부품 인프라를 구축한 것도 러시아에서의 성공비결중 하나다. LG전자는 국내 협력사 7개 중소업체에게 루자공장에 부지를 제공했고,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협력업체 수를 늘리기 위해 S동 2단지 건설을 추진 중이다.
루자공장 관계자는"러시아는 산업 인프라가 전무해 부품 하나만 없어도 제품 생산이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루자공장 인근에 LG전자의 모든 부품업체가 들어와있다"면서 "이것이야 말로 상생협력을 통해 일궈낸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러시아에서 경제 위기를 겪을 때마다 역발상 전략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2008년에는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자 제품개발, 마케팅, 광고비에 생산량까지 2배로 늘렸다. 김영찬 CIS 총괄 본부장(부사장)은 "공장을 쉬고 가동을 줄이면 손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물량도 전보다 더 늘리고, 사람에 대한 연구개발(R&D) 비용도 늘렸다"면서 "이런 덕분에 LG전자의 오디오, 청소기, 에어컨 등 5개 품목은 '러시아 국민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그는 "모스크바 시내에서 크렘린 궁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돌다리를 지나야 하는데, 20년째 LG의 광고판이 부착돼있어 사람들이 아예 LG다리로 부르고 있다"며 "다른 기업보다 먼저 LG摸??가치를 알아봤듯이, 앞으로도 러시아의 미래와 가치를 보고 투자, 러시아 및 CIS지역에 일등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글ㆍ사진 임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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