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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오란씨' 도시의 뒤켠… 꿈틀거리는 불안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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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오란씨' 도시의 뒤켠… 꿈틀거리는 불안에 갇히다

입력
2010.02.2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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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영 지음 / 민음사 발행ㆍ341쪽ㆍ1만1,000원

배지영(35)씨의 소설은 컴컴한 뒷골목을 비추는 강한 조명등 같다. 현대인과 현대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소재로 선명하고 강렬한 서사를 구사하는 배씨의 리얼리즘은 이른바 '2000년대 소설'을 주도하고 있는 1970, 80년대생 작가들의 작풍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오란씨> 는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배씨의 첫 소설집으로, 6편의 중단편이 수록돼 있다.

배씨의 등단작이기도 한 표제작은 1988년 서울의 한 시장통에서 성장하는 10대 이복 형제의 이야기다. 중학교만 마치고 개를 도살하며 고모의 보신탕 가게 일을 돕는 형은 진중한 성격에 완력으로 초등학생 동생에겐 우상 같은 존재다. 형은 시장 사람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류 형사'를 살해한 뒤 자신이 연모하던 술집 종업원과 도주한다.

동생은 경찰의 추궁에 형의 행선지를 알려준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가출해 덤프트럭 기사가 된다. 작가는 TV로 중계되면서 고도 성장의 환상을 부풀리던 올림픽, 비루한 욕망과 부조리가 날것인 채로 횡행하는 시장을 대비시키며 그 사이에서 파멸해가는 형제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버스' '몽타주' '파파라치'라는 제목이 붙은 3편의 '슬로셔터' 연작도 인상적이다. '버스'는 폭우가 내리는 이른 새벽 혼자서 버스에 탄 젊은 여성을, '몽타주'는 연쇄살인범의 이웃이었던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현대인의 불안 의식을 면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버스'의 여주인공은 운전사가 자기에게 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스스로를 심리적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 불안감이 결국 오해였음이 밝혀진 후에도 그녀는 기어이 또다른 불안을 찾아낸다. 그 결말이 유발하는 실소는 우리 안의 강박적 불안 의식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씁쓸한 웃음이기도 하다.

'어느 살인자의 편지'는 제목대로 서간문 형식으로 쓰여진 '한 연쇄살인자의 탄생기'다. 폭식하다 죽은,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주인공은 버려진 아기 고양이를 잔혹하게 죽인 후 제 손에서 악취를 느끼고, 이 환각은 그에게 통제불능의 살인 욕구를 일으킨다.

살인자가 그로테스크한 고백을 담은 편지를 한때 소설가를 지망했던 사회복지사에게 보내는 액자 구조를 취한 이 소설의 끝에는 작가 배씨의 소설가론으로 읽을 만한 의미심장한 구절이 있다. "그는 내가 포기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도록 재촉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이국적인 과일 향이 나는 빈민촌 소설이 아닌, 익숙해지지도 않고 떼어낼 수도 없는, 그의 손바닥에서 나는 그런 '냄새' 나는 글을 쓰도록 말이다."(203쪽)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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