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라면 규제 완화를 주문하는 게 상식이다. 규제가 적어야 시장 진출이 보다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경향에 역행하는 경영인이 있다. 주인공은 셀트리온 그룹의 서정진 회장(사진). "정부 조직 슬림화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제외해야 합니다. 식약청이 규제를 글로벌 수준으로 강화해야 우리 기업들이 규제가 까다로운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겨룰 수 있습니다."
셀트리온은 세포와 단백질 등을 배양해 암이나 관절염 등을 치료하는 바이오의약품 생산 기업이다. 아직까지 신약을 직접 개발하진 못하지만, 신약과 거의 같은 치료 효과가 있는 바이오시밀러(복제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는 독보적이다. 5년 이상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이 빛을 발하면서 작년 영업이익률이 무려 65%. 상장된 2개 회사의 시가총액만도 2조원을 웃돈다.
서 회장이 규제 강화를 외치는 건 그간 어렵게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교훈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자국 국민의 건강과 밀접한 의약품에 대해 매우 까다로운 안전 기준을 적용한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식약청 기준을 충족해 해외에 나가더라도 수입국은 이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 "국내 식약청 기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해외시장을 뚫기 위해서는 모든 걸 새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해외 시장을 중요시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국내 제약시장은 겨우 13조원 수준으로 정체돼 있지만, 세계시장은 바이오신약의 특허 만료와 새 바이오신약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그 규모(500조원)가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은 이미 해외 20여 개 국에 유방암 치료제인'허셉틴'을 예약 판매 중이다.
서회장은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 대우자동차 임원으로 샐러리맨 생활을 마감한 뒤 직원 10여 명과 함께 당시 불모지였던 바이오제약 분야에 뛰어들었고, 셀트리온은 연내 세계 2위의 생산설비를 갖춘 바이오시밀러 업체가 될 전망이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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