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쭉날쭉 재판이 말썽이다. 검사는 10년 구형을 하고, 1심 판사는 반으로 깎고, 변호사를 선임하여 항소하면 또 깎인다. 하나의 범죄사실을 놓고 증거나 상황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같은 법률가인 검사와 1심 판사, 2심 판사가 이렇게 달리 재판한다면 한 사람만 맞고 나머지는 다 틀린 셈이다. 나아가 모두 다 틀렸을 수도 있다.
게다가 대법원은 국민이 재판을 받아 보겠다는 데도 '심리 불속행 '이라며 재판을 거부한다. 우리 국민은 지금까지 이런 사법체제 아래 살아온 것이다. 더구나 엄청난 변호사 비용을 지불하면서 말이다. 경제학이나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보면, 법조계의 낙후성은 도를 넘어도 한참이나 넘었다.
낙후한 사법제도 개혁을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법원의 이런 모습은 국민에게 낭패감과 절망감을 안겨준다. 급기야 국회가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나섰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마다 사법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았지만, 정작 핵심 적인 개혁은 하지 못하고 번번이 좌초되었다. 개혁 대상인 대법원이 사법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이를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는 외부 권력의 재판 간섭이 문제가 되었다. 그때는 사법의 독립이 중요 문제였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외부의 간섭은 거의 사라졌다. 문제는 법원 내부의 시대착오적인 관료주의 때문에 재판의 독립이 침해되고, 사법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법원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은 무풍지대에서 국민에 책임을 지지 않는 재판을 해온 것이다. 어떤 사람이 판사가 되어야 하며, 재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법원이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법서비스를 제대로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이런 모순이 갈수록 깊어져 결국 이번에 문제가 터진 것이다.
사법을 지배하는 헌법 원리는 사법의 독립성(judicial independence)과 사법의 책임성(judicial accountability)이다. 법원의 본래 기능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재판을 하는 것이다. 재판은 언제나 올바르고 정확해야 한다. 전국 법원의 재판이 들쭉날쭉 없이 골라야 하고, 돈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법이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질 높은 재판, 올바른 재판, 정확한 재판,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재판,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국민의 삶을 복되게 하는 재판이 바로 책임성 있는 재판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떤 사람을 판사로 앉혀야 하는지, 이런 판사를 어떻게 양성하고 선발해야 하는지, 그 시스템을 올바로 구축해야 한다. 또 어떻게 재판을 해야 올바른 재판이 될 수 있는지 제도를 정확히 디자인해야 한다. 부적합한 판사는 언제나 법원에서 퇴출시키는 시스템도 갖추어야 한다. 국민의 사법참여, 재판 감시, 판사 감독 등의 여러 제도는 이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다.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든 판결문은 공개되어 투명한 재판이 이루어져야 하며, 판사는 자신의 재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관료사법' 그늘 벗어나야
우리 사법부는 그 동안 이런 사법 책임성을 외면한 채 일제 시대부터 내려온 관료사법 구조를 붙들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판사들까지 '조직 이익' 운운하며 이기적 이익집단의 모습마저 드러내고 있다. 대법원장은 임기 6년 동안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전국 판사와 법원 직원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관료사법의 그늘에서 법원은 더욱 정치화하 고 있다.
한국이 진정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국가 경쟁력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발목을 잡고 있는 현재의 법원을 국가적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범국민적 사법개혁기구를 만들고, 시민의 힘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선진 법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 · 새사회전략정책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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