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46)이 돌아왔다. 등단 이듬해인 2004년 '이야기의 향연'으로 불린 장편소설 <고래> 를 발표, 단편 우위의 한국문학에 장편 대세론을 일으켰던 그가 단편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2007) 이후 오랜만에 들고 온 작품은 두 번째 장편 <고령화 가족> (문학동네 발행). 고령화> 유쾌한> 고래>
사회 부적응자나 다름없는 중년의 3남매가 칠순 노모의 낡고 좁은 집에 한꺼번에 의탁하면서 벌어지는 갖은 사건들을 그린 이 소설은 여러 모로 <고래> 와 비교된다. 입담 좋은 3인칭 화자를 내세워 가히 '대하 구라'라 할 만한 서사를 펼쳤던 작품이 <고래> 라면, 이번 작품은 3남매 중 둘째인 삼류 영화감독 '나'를 화자로 소소한 일상적 사건들을 아기자기하게 엮어 나간다. 고래> 고래>
소설에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탁월한 이야기 솜씨, 생생한 인물 묘사는 두 작품에 공통된다. 작가 천씨는 "오래 전 '나이 든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산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소설로 구상하다가 지난해 초 집필을 시작, 10월께 탈고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작가, 연극연출가로도 활동 중인 그는 "영화감독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자전적인 얘기는 전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10여년 전 메가폰을 잡은 첫 영화가 폭삭 망한 뒤 좀체 재기하지 못하던 48세 영화감독 나는 생활고를 못 이기고 모친의 집으로 들어간다. 스무 평 남짓한 그 집엔 전과 5범의 전직 폭력배, 120㎏의 거구인 장남 오함마가 3년째 기식 중이다. 여기에 술집을 운영하는 막내 미연이 이혼하면서 딸 민경을 데리고 엄마 집에 온다. 남편과 사별하고 칠십 넘어서도 화장품 행상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엄마는, 변변찮은 자식 셋을 거두게 된 상황을 오히려 기꺼워한다.
공부에는 뜻이 없고 괴팍한 외삼촌들과 복닥이게 된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민경이 가출을 감행하면서 가족은 풍파를 겪는다. 서로를 탓하던 3남매는 결국 자기만 알고 있던, 엄마의 불륜과 형제들의 출생 비밀을 폭로한다. 서로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된 3남매는 불화를 겪지만, 노모는 의연한 자세로 집안의 동요를 수습한다. 오함마는 조카를 찾기 위해 잔혹한 폭력배와 거래를 하고, 나 또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에로 영화를 만들며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 '콩가루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신파조로 흐를 수도 있을 소설은 눈물샘보다는 웃음보를 겨냥하는 천씨의 필치 덕분에 독창적인 가족소설로 거듭났다. 작품의 주요 소재로도 등장하는 미국 작가 헤밍웨이의 문체처럼 군더더기 없는 날렵한 문장이 작품에 개성을 더한다. 천씨는 "가족소설을 쓰려 했다기보다는 감각에 따라 쓰다 보니 가족소설이 된 셈"이라며 "그래도 다른 작품에 비해 내 감정이 이입된 부분이 많은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