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발행ㆍ152쪽ㆍ7,000원
이병률(43) 시인 하면 슬픔, 응시, 바람 혹은 여행 같은 단어들이 절로 떠오른다. 평론가 신형철씨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버티고 버텨서 슬픔이 눈물처럼 투명해질 때 겨우 쓰는" 시인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바람"이다. 국내에서 출간된 시집 중 손꼽히는 판매고를 올린 <바람의 사생활> 이후 3년여 만에 나온 그의 세 번째 시집 <찬란> 엔 한층 깊고 투명해진 시인의 시선이 오롯하다. 찬란> 바람의>
표제작에서 이씨는 삼라만상이 모두 '찬란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찬란'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사전적 의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예컨대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 그러니까 울음처럼 솟구치는 내면의 욕구를 애써 다스리는 일조차 시인은 '찬란하다'고 읊조린다. 그러면서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라고 말한다. 그래서 '찬란하다'는 형용사보다 동사에 가깝게 읽힌다. 삶을 견디는 일, 거기서 맺힐 눈물을 시인은 '찬란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삶의 고단함에 대한 나직한 신음들이 있다. 시인은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 절반으로 나눠 살기 어려울 때는/ 내가 하나가 아니라 차라리 둘이어서// 하나를 구석지로 몰고 몰아/ 잔인하게 붙잡을 수도 있을 터이니'라며 '정작 내가 사는 일은 쥐나 쫓는 일이 아닌가'라고 회의한다('생활에게'에서). 바람처럼 살고자 하는 시인은 그런 욕망과 현실의 틈을 자기 다리에 빗대 '환한 대낮에 절고/ 저녁이 다 오면 편다/ 직업적으로 절고/ 인간적으로 편다'고도 표현한다('다리'에서).
지친 시인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는 것은 일상의 사소한, 그러나 따뜻한 순간들이다.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 꽃다발을 놓고 간다며/ 마늘 찧던 손으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나오신다'. 못 들은 척 골목을 빠져나가는 시인에게 할머니는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에 가라'고 당부하고, 그 따뜻한 마음이 시인의 마음을 적신다.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술을 몇 잔 부어주고서야/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온다'('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에서).
이씨의 시를 더욱 절창이게 하는 이별시는 4부로 나뉜 이번 시집의 3, 4부에서 여러 편 만날 수 있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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