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탈레반 활동을 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파키스탄인 A(31ㆍ구속)씨(한국일보 2월20일 1, 8면)가 성직자(이맘)인 형 B(36)씨 신분으로 위장해 정식 종교비자를 발급받아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또 국내 당국에 자신의 사망진단서까지 제출하며 철저하게 신분을 세탁했고, 대구에서 6년여 간 성직자 생활을 하며 영향력을 키워온 것으로 조사됐다.
21일 경찰 등에 따르면, 2003년 6월 불법체류로 추방됐던 A씨는 같은 해 8월 형 B씨의 이름으로 정식 종교비자를 받아 대구 U이슬람사원의 이맘으로 재입국했다. 당시 U사원 신도들은 자신들을 이끌 이맘을 초청하기 위해 B씨의 종교학교 졸업내용 등이 담긴 서류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제출해 종교비자를 받게 해줬다. U사원이 초청한 B씨 대신 동생인 A씨가 여권 사진을 바꿔치기해 입국한 것이다. 특히 A씨는 2007년 여권 위조를 의심 받아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조사를 받게 되자, 당시 파키스탄 정부가 발행한 A씨 사망증명서까지 제출하며 자신이 "B가 맞다"고 주장해 무혐의로 풀려났다고 경찰은 전했다.
U사원 신도들도 "우리는 A라는 이름은 듣지도 못했고, 모두 B씨로 알고 있어 이번 사건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B씨가 종교 지식에 해박했는데 (신분 위장이) 믿기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신자는 "(이번 사건이) 종파간 갈등이나 채무관계로 얽힌 반대파들의 모략"이라며 "그가 경북 왜관(미군기지 소재)에 자주 간 건 맞지만 그곳에 무슬림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A씨가 2001년 처음 한국에 입국했을 당시 대구에서 활동한 점으로 미뤄 U사원 관계자들이 A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 소속돼 있지 않은 U사원이 B씨의 종교비자를 발급받게 해준 과정도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 관계자는 "보통 해외에서 이맘을 데려올 때 중앙회가 서류를 모아 검증한 뒤 관련기관에 제출해 종교비자로 초청하는 형식을 취한다"며 "하지만 U사원은 중앙회에 가입돼 있지 않아 독자적으로 이맘을 초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U사원 측은 "개인들이 돈을 모아 세운 사원이라서 중앙회에 가입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2003년 작은 주택에서 시작된 U사원은 A씨가 이맘으로 온 뒤 크게 부흥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5년엔 신도 헌금을 모아 3층짜리 예배당을 세웠으며, 가장 큰 모임인 금요일 예배엔 50명 정도가 참석하지만 100여명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한편, 검찰은 지난해 말 A씨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에서 간첩 및 테러사건을 전담하는 공안부로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대검 관계자는 "처음엔 외사부에서 담당했으나 지난해 말 사건 성격에 맞춰 공안1부에서 경찰 수사를 지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수사성격이 외국인이 연관된 일반적인 출입국관리법 위반(여권위조 등) 혐의에서 간첩 혐의 사건으로 바뀐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해 2월 중장비를 파키스탄에 밀수출한 사건에 개입한 A씨를 조사하던 중 국내 정보기관 등으로부터 "미 중앙정보국(CIA) 리스트에 오른 인물"이란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확대해왔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김현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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