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정원 지음ㆍ차혜원 옮김/ 이산 발행ㆍ272쪽ㆍ1만5,000원
형과 아우가 아버지의 유산 때문에 송사를 벌였다.
재판을 맡은 지방관리가 아주 재미있는 판결을 내놨다. 다리를 한 짝씩 내놔라. 매우 쳐서 안 아픈 다리 주인에게 유산을 주겠다. 어느 다리라고 안 아플까. 한 아버지에서 난 형제가 서로 싸우면 고인이 아프지 않겠냐고 깨우치려는 뜻이었다.
그래도 형제가 화해하지 않자 둘을 쇠사슬로 한데 묶어 가둔다. 옴짝달싹 못하고 여러 날 붙어 지내다 보니 조금씩 서로 말도 하고 후회하는 눈치가 보였다. 그러자 형제를 불러 최종 판결을 내린다.
각자 아들이 둘씩이니 하나씩 내놔라. 고아원에 보내거나 거지에게 줘버리겠다. 그래야 너희 형제가 죽은 뒤 아들들이 유산 때문에 다투는 일이 없지 않겠냐. 그러자 비로소 형제는 뉘우치고 화해한다.
솔로몬의 지혜를 연상시키는 이 옛이야기는 실화다. 중국 청나라 때 지방관리 남정원(1680~1733)의 이 판결을 내린 명판관이다.
<녹주공안> 은 그가 47세 때 광동성 조주현에 부임해서 3년간 다스리며 처결한 각종 민ㆍ형사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직접 쓴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딱딱할 것 같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르다. 세태소설처럼 재미있고 생생하다. 녹주공안>
귀신을 불러 대질심문을 한 사건도 있다. 아주 으시시한 밤 으시시한 곳에 살인사건 피의자들을 불러놓고 피살자의 혼을 데려왔다며 겁을 줘서 일종의 유도심문을 한 끝에 범인을 잡아냈다.
이 책에는 이처럼 기발하고 명민한 판결이 많다.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해결하고, 누명 쓴 사람을 구해주고. 남정원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백성을 아끼는 마음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당당한 기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여인이 글을 몰라 백지로 소장을 내자 "백성이 호소하면 무엇이든 접수하라"며 물리치지 않고 살펴서 억울함을 풀어줬다. 마을 동굴에서 좀도둑의 시체가 발견되자 '도둑이라도 인명은 귀하다'며 끝까지 범인을 추적해서 잡아냈다.
자신의 개혁적 정무에 반발해 파업을 일으킨 관리들은 단호히 제압하면서도, 징세를 거부하며 폭동을 일으킨 토호와 주민들에 대해서는 경중을 가려 벌 받는 이를 최소화했다.
남정원이 부임했을 때 조주현은 수년 간 가뭄과 흉작에 도둑이 날뛰고 관리는 부패해 민심이 흉흉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워낙 문제가 많은 고장이라 이 현을 맡았던 네 명의 지방관이 줄줄이 비리나 직무태만으로 감옥에 갇힌 뒤였다.
그는 공평하고 현명했다. 관리나 부자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그가 오기 전에는 죄를 지어도 처벌하는 시늉만 했는데 말이다.
이 책은 그저 옛날 이야기 책으로 읽어도 흥미롭지만, 요즘 세상에 던지는 시사점도 많다. 무릇 관리는 어떠해야 하는지, 사람의 얼굴을 한 참된 정의는 무엇인지 생각케 하기 때문이다.
일본인 역사학자 미야자기 이치사다의 일역본을 옮겼다. 미야자키는 원문을 충실히 살리면서 이야기마다 간결한 해설을 붙였는데, 그 내용도 짭짤하게 읽을 만하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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