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에 다시 서는 교단인데…,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네요.”
17일 만난 경기 안양ㆍ과천교육청 정지풍(63) 교육장은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24일 오전 10시 30분 교육청 영재교육원에서 초등학생 5학년 20명을 대상으로 한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교직생활 42년 경력의 노 교육장이니,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라면 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이 들 법한데도 정 교육장은 가벼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968년 경기 화성시 상신초교에 첫 부임, 89년 세류 초교를 마지막으로 교감ㆍ교장, 장학사 등 전문직을 거쳤으니 일선 교단에 서는 것은 무려 21년 만이다. 정 교육장은 “교육자로 처음 발을 내디딘 교단에서 은퇴하고 싶었다”며 ‘마지막 수업’을 자청한 이유를 설명했다. 교육장이 강단에서 수업을 하며 은퇴를 맞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45분씩 2교시에 걸쳐 진행되는 이 마지막 수업에서 정 교육장은 ‘전공’이나 다름없는 과학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1교시는 벼, 보리, 밀 등 식물의 씨앗을 실제 관찰하고 분류해 보는 ‘여러 가지 곡식 관찰과 분류’를, 2 교시는 반영구적인 전자기력을 직접 만들어 보는 ‘영원 불변한 나만의 자석 만들기’를 주제로 수업을 진행한다. 정 교육장은 이번 마지막 수업을 위해 하루 1~2시간씩 틈틈이 관련 교재를 읽으며 수업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 교육장은 42년 교직 생활 가운데 가장 보람 있었던 일도, 가장 안타까웠던 일도 모두 1980년 한 해에 발생했다고 했다. 정 교육장은 당시 수원 세류초교 5학년 담임을 맡게 됐는데 막상 맡고 보니, 성적이 학년에서 제일 처지는 소위 ‘꼴찌반’이었다. “요즘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도 틀림없이 반 편성이 잘못됐을 거예요. 4학년에서 꼴찌를 도맡아 했던 아이들이 거의 통째로 5학년 한 반에 편성됐으니까요.”
3월 첫 월말평가에서 8개 반 가운데 8등을 했는데 7등을 한 반과 평균 10점 이상 차이 났다. 꼴찌 중에서도 꼴찌였던 셈. 정 교육장은 “당시만 해도 ‘월말 평가’라는 게 있어 매달 시험을 보도록 돼 있었다”며 “꼴찌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달 꼴찌를 하니 학부모 뵐 낯도 없고 교사 스스로도 자존심 상하고 참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학급개조 작전’ 착수. 우선 아이들에게 공부에 대한 재미와 흥미를 심어주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일단 전공인 과학부터 시작했다. 그 결과 2학기에는 학생 22명과 함께 ‘과학장(과학 경진대회)’에 출전, 22명 가운데 21명이 은장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과학 분야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학구열은 점차 다른 과목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학년말 경기도교육청이 평가하는 학력평가시험에서는 8개 반 가운데 2등을 차지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이런 어려움들을 기반으로 83년까지 정 교육장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전국 과학 전람회, 학생 과학 발명품 대회, 모형 항공기 대회 등 전국 규모의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이 시절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시기지요.”
마지막으로 현직 교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묻자, 정 교육장은 ‘즐거움과 사랑’을 얘기했다.
“요즘 젊은 교사들 똑똑하고 열정이 있잖아요. 60 넘은 노 교사가 굳이 잔소리 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아요.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하는 일, 그리고 학생을 내 아이와 같이 사랑하는 일. 그건 교사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그리고 가지고 있는 최고의 덕목이거든요.”
정 교육장의 퇴임식은 마지막 수업 하루 뒤인 25일 오전 10시 안양ㆍ과천교육청 강당에서 열린다.
글ㆍ사진=강주형 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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