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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말의 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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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말의 성찬

입력
2010.02.2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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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호주 시드니올림픽 한국과 네덜란드의 남자 하키 결승전. 한국은 연장 접전 끝에 승부 때리기에서 오렌지 군단에 4대 5로 분패했다. 그러나 고작 3개 실업 팀에 선수가 200명 밖에 안 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궈낸 값진 수확이었다.

국민과 언론의 환호와 찬사가 이어졌다. 대표팀 감독은 "실업 팀이 2개 정도 늘어나고 전용 구장을 만드는 등 여건만 개선하면 금메달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전용 구장은 생겼지만 실업 팀은 고작 한 곳이 추가됐다. 하키 구장에서 열띤 응원 함성을 듣기는 여전히 어렵다.

▦여자 핸드볼은 1984년 이후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한국 구기 사상 전무후무할 대기록이다. 그러나 핸드볼계 인사들은 올림픽이 끝나면 '한데볼''한때볼'이라고 자조했다. 올림픽 때만 반짝 인기를 끌 뿐, 평소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음지의 운동이라는 의미에서였다.'우생순'이 본격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끈 것은 베이징올림픽 이후인 2008년 말부터. 한 대기업 회장이 협회장으로 취임해 핸드볼 리그를 출범시키고 발전재단을 설립했다. 2009 핸드볼 큰잔치 기간에는 3만여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레슬링 배드민턴 양궁 역도 유도 탁구 태권도 펜싱 하키…. 국내에서는 대중적 기반이 약한 비인기 종목이다. 하지만 올림픽 메달 효자 종목이다. 국민이 그토록 원하는 올림픽 메달은 대부분 이 종목에서 나온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무관심과 홀대 속에 4년 동안 몸과 기술을 담금질하는 것은 올림픽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메달을 따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비인기 종목에 관심과 지원을 부탁한다고. 그러나 그 때뿐이다. 열광적 환호와 찬사는 선수들이 메달을 걸고 귀국하고 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를 새로 쓴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선수의 허벅지ㆍ발목 둘레 등 신체 수치부터 운동 능력, 훈련 과정, 심지어 갓 스물을 넘긴 선수들의 과거까지 낱낱이 소개되고 있다. 불굴의 의지와 투혼에 대한 칭송도 빠지지 않는다. 그들의 상업적 성공을 점치는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왠지 그런 말의 성찬들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대중의 환호와 찬사가 휩쓸고 간 뒤, 관중석이 텅 빈 빙상장에서 얼음을 지쳐야 하는 선수들, 그들이 느낄 허탈과 외로움과 설움…. 이번엔 제발 그런 불길한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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