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제위기가 마침내 실업대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1월 현재 공식 실업자가 121만 6000명인데, 여기에 구직 단념자 19만 6000명, 그냥 쉬고 있다는 153만 5000명, 주당 18시간 미만 취업자 108만 2000명을 합한 '사실상 실업자'는 무려 400만 명에 달한다. 경제위기는 회복되고 있다는 데 실업자는 오히려 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의 악순환
일자리 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른바 '일자리 없는 성장'이 현실화하면서 발생하였다. 취업자수 증가율을 GDP 성장률로 나눈 값인 고용탄력성이 1990년대 0.36에서 2000년대 0.32, 2008년 0.28로 점점 낮아졌다. 현재 한국의 고용탄력성은 OECD국가 중에서 가장 작다.
이와 같은 고용 없는 성장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특성에서 비롯되고 있다. 수출을 주도하는 재벌 대기업들에서 수출이 늘어도 고용이 늘지 않고, 수출이 증가해도 내수가 늘지 않아 중소기업의 고용도 증가하지 않는다. 수출을 주도하는 대기업들이 설비투자를 통해 생산 규모를 확장하면서 인원은 줄이기 때문에 수출이 늘고 설비투자가 늘어도 고용은 오히려 감소한다.
더욱이 기관투자가의 영향력이 강한 기업지배구조에서 단기 주가수익 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재벌 대기업의 상시적 구조조정이 감원을 초래하여 일자리를 줄인다. 또한 이미 다국적 기업화한 수출 대기업들은 수출로 획득한 이윤으로 해외투자를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일자리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창출된다. 게다가 수출 대기업의 고액 연봉자들은 국내소비보다 해외소비를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내수 확대에 기여하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수출 대기업이 성장하고 이윤이 증대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지난 10년간 10대 그룹의 일자리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한편 대기업의 지배아래 정체되고 위축되고 있는 중소기업은 일자리를 늘릴 능력이 없다. 대기업의 하청 기업인 중소기업들은 모기업의 단가 인하로 경영이 악화하여 '저생산성-저임금-저숙련'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중소기업들은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다. 대기업을 선호하는 대졸자들은 중소기업에 취업하기를 꺼리고 취업 준비생으로 대기업의 소집을 기다리는 산업예비군 대열에 합류한다.
이러한 경제구조가 개혁되지 않는 한, 일자리 없는 성장은 지속될 것이다. 국가정책 수립시 고용영향 평가를 하고 중소기업 고용증대 세액공제제도를 도입하는 것과 같은 고용전략은 임시방편 처방에 불과하다.
수출주도 성장 체제를 수출-내수 동반성장 체제로 전환하고, 대ㆍ중소기업의 하청관계를 파트너 관계로 전환하며, 나아가 단기수익성 추구의 금융주도 경제를 장기 이윤추구의 지식주도 경제로 전환해야 일자리 있는 성장이 실현될 수 있다. 설비투자 중심의 대량생산경제에서는 더 이상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없다. 지식투자와 녹색투자에 기초한 '지식기반 녹색경제'로 이행해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고용 보호'를 정책 중심으로
수출과 해외투자 부문에서 획득한 이윤의 일부를 조세로 흡수하여 육아 양로 교육 의료 등 사회서비스 분야 공공부문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익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해외투자의 과실이 사회투자의 증대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부자 증세-중산층 감세-빈민 조세지원' 정책으로 내수를 확대해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글로벌 일자리 협약(Global Jobs Pact)'이 권고하고 있는 것처럼 금융시장 규제와 함께 고용보호와 사회보호를 사회경제정책의 중심에 두는 발전 경로를 채택해야 당면한 일자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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