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상혁 지음/ 북너머북스 발행ㆍ264쪽ㆍ1만5,000원
조선시대의 재판이라고 하면 흔히 높은 누대에 앉아 피고인을 향해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호통 치는 지방관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소장과 증거의 제출, 변론, 선고, 항소와 상고 등 소송 당사자들의 권리관계나 범죄 여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정교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오늘날의 재판과 달리, 당시에는 막연한 심증으로 사건을 예단하고 자의적으로 형량을 결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선입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엉성한 판결이나 마땅찮은 소송 관행을 ‘원님재판’이라고 빗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과연 조선의 재판 절차가 그렇게 허술했을까. <나는 노비로소이다> 는 임금이 넌더리를 낼 정도로 흔했던 조선시대의 쟁송인 노비 관련 소송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사법체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운영됐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인 임상혁 숭실대 법대 교수는 민사소송법의 해석과 성립 절차를 연구하다가 조선시대의 소송이론에 관심을 가졌다. 나는>
저자는 1586년(선조 19년) 4월 나주 관아에서 벌어진 한 흥미로운 쟁송을 들여다본다. “나는 노비가 아니라 양인이다”라는 주장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당시 노비소송의 일반적인 양태였는데, 이 소송은 꽤 특이했다. 피고인 일흔이 넘은 여성 다물사리는 자신이 양인이 아니라 관노인 성균관 노비라고 주장했고, 원고인 나주의 사족 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양인이라고 다퉜다.
이지도 집안의 종 윤필과 결혼해 6명의 딸을 둔 다물사리가 자신을 관노라고 주장한 논리가 정교하다. 다물사리는 부모 중 한쪽만 노비여도 자녀들은 노비가 된다는 ‘일천즉천(一賤卽賤)’, 자식의 신분은 어머니 쪽을 따른다는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이라는 조선시대의 신분 논리의 맹점을 파고든다. 자신이 양인이라면 딸들은 윤필의 상전인 이지도 집안의 사노가 되지만, 자신이 관노라면 딸들의 신분은 사노보다 처지가 나은 관노가 되기 때문이다. 송사를 주관했던 나주목사 김성일은 양쪽의 진술내용과 호적 자료의 대조, 다물사리의 진술 태도를 면밀히 조사한 뒤 다물사리가 자신의 호적을 위조해 자녀들을 이지도 집안의 예속에서 벗어나도록 했음을 밝혀내고 그녀의 유죄를 선고한다.
애끊는 모정이 신분제라는 당대의 제도적 벽을 넘어서지 못한 이 소송을 중심으로 저자는 오늘날 못지않게 체계화된 조선의 사법체계를 조명한다. 가령 조선시대에도 상급기관에 판결의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심급제도가 운영됐고,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의 절차를 구별했으며, 당사자와 관련이 있는 법관이 배제되는 제척제도가 운영됐던 사실 등이다.
‘재판’과 ‘조선시대’라는 딱딱하고 낯선 두 소재를 결합시켰지만 책은 술술 읽힌다. 재판제도나 절차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송사와 관련됐던 인물의 일화, 소송을 소재로 한 조선시대의 민담이나 흥미로운 판례, 재판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당시의 시대상을 솜씨있게 버무려 놓았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소송을 엄정하고 명쾌하게 마무리한 김성일의 다른 판례들을 소개하거나, 소송 실무를 담당한 아전을 설명하면서 조선시대에 아전의 권한과 위상은 어땠는지를 설명하는 식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지도와 다물사리가 벌이는 소송절차를 통해 당시의 체제가 빚어내는 반목 양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당시의 법정자료는 자유를 향한 인간 본성이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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