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m를 위해 훈련한다는 마음으로 뛰었다"는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모태범(21ㆍ한국체대)은 주종목인 1,000m에 나서자 물 만난 고기처럼 얼음판을 지쳤다.
비록 샤니 데이비스(28ㆍ미국)에 뒤져 금메달은 놓쳤지만, 은메달을 추가하면서 이번 대회 한국선수단의 대들보로 우뚝 섰다. 숨가빴던 18일(한국시간)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에서 펼쳐진 레이스를 재구성해 봤다.
이틀 만에 달라진 위상
장내 아나운서가 16조의 모태범을 소개하자 전에 없던 함성이 쏟아졌다. 캐나다 관중이 3분의1 이상이고, 나머지는 미국 또는 유럽 관중인 경기장에서 나온 예상 밖 반응.
옆 라인에 선 토리노대회 5,000m 금메달리스트 채드 헤드릭(33ㆍ미국)만큼이나 큰 관심을 모았다. 이틀 전 500m에서 우승한 '단거리 신동'에 대한 높아진 기대였다.
200m, 600m 1위. 금메달이 보인다
총성이 울리자마자 맨발로 뛰듯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트랙의 반을 달려 전광판에 찍힌 기록은 16초39. '-0.41'도 함께 자리했다. 15조까지 선두였던 선수보다 200m 기록이 0.41초 빠르다는 뜻. 외국 관중 사이에서 "모(MO)!" 외침이 점점 커져만 갔다.
이후 한 바퀴를 돌고 나서도 모태범은 여전히 1위. 41초75는 종전 선두보다 0.43초 빠른 기록이었다. 200m 소화 후 400m에서 0.02초를 더 줄인 셈이다. 끝선에 붙어 최단거리를 달리는 모태범의 등 뒤로 코칭스태프의 독려가 쏟아졌다.
혼신의 스퍼트로 일군 값진 은메달
남은 거리는 불과 400m. 한 바퀴면 희비가 엇갈릴 상황이었다. 다소 힘에 부친 듯 얼굴이 일그러지던 모태범은 마지막 코너를 돌아 피니시 라인이 보이자 다시 힘을 냈다.
팔 동작이 커질수록 속도가 점점 높아졌다. 마침내 피니시 라인 통과. 1분09초13 기록과 동시에 '-0.32'를 확인한 모태범은 만족한 듯 세차게 박수를 한번 쳤다.
남은 1개 조를 남겨둘 때까지 1위를 지키던 모태범. 그는 마지막 조 데이비스의 역주로 2위가 확정되자 아쉬움 반 기쁨 반으로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경기 후 그가 가장 먼저 남긴 말은 "아, 아까워". 모태범은 "데이비스를 보면서 '아, 저거 조금만 늦게 가주면 안되나'라고 생각했다"며 웃어 보였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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