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괴물이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을 집어삼켰다.
18일(한국시간)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이번 시즌 월드컵시리즈 세계랭킹 1위 샤니 데이비스(28ㆍ미국)와 500m 깜짝 금메달의 주인공이자 세계랭킹 2위 모태범(21ㆍ한국체대)의 '빅뱅'이 시작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4관왕까지 기대되던 데이비스는 주종목에서의 명예 회복을 노렸고, 모태범은 정점에 오른 상승세를 잇겠다는 각오였다. 이미 5,000m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한 데이비스는 500m에서도 1차 레이스에서 부진한 성적을 낸 뒤 1,000m 집중을 위해 2차 레이스를 아예 포기했었다.
먼저 출발선에 선 건 모태범. 16조에서 미국의 채드 헤드릭 옆 아웃라인에 자리한 모태범은 폭발적 스타트로 200m를 16초39에 끊었다. 종전 1위이던 스테판 그루투이스(네덜란드)의 200m 기록보다 무려 0.41초를 앞선 것.
초반 기세를 끝까지 이어가는 뚝심까지 빛났다. 600m까지 41초75로 끊어 역시 그루투이스를 0.43초 앞선 모태범은 마지막 한 바퀴(400m)에서 남은 힘을 전부 짜낸 뒤 피니시 라인 직전 힘차게 오른 날을 차올렸다. 기록은 1분09초12. 6명을 남긴 가운데 그루투이스를 0.32초차로 제치고 1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모태범이 스타트와 뚝심으로 7,600명 만원 관중을 사로잡았다면 데이비스는 스퍼트로 경쟁자들의 기를 죽였다. 2006년 토리노대회에서 흑인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개인종목 금메달을 따낸 데이비스.
그는 마지막 조에서 문준(28ㆍ성남시청)과 만나 아웃코스에서 출발했다. 200m 기록은 모태범에게 0.34초 뒤진 16초73. 모태범의 금메달이 굳어지는 듯했다. 600m까지도 0.26초가 뒤졌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마지막 한 바퀴를 초반 400m 뛰듯 질주했다. 문준과 격차는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멀찌감치 벌어졌다.
피니시 라인 통과 후 전광판에 찍힌 기록은 1분08초94. 모태범보다 0.18초 빠른 기록이었다. 1,000m 세계기록 보유자(1분06초42)다운 무서운 막판 뒷심.
경기 후 김관규 대표팀 감독은 "데이비스의 뒷심은 역시 대단하더라"면서 "(모)태범이가 인코스에서 시작했다면 마지막 코너에서 바깥으로 크게 돌 필요가 없어 데이비스를 이길 수도 있었다. 앞으로 태범이의 라이벌은 데이비스"라고 말했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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