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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생태주의와 근본주의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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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생태주의와 근본주의 경향

입력
2010.02.1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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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한전은 외국에서 원전을 수주했다. 실제 수주액 200억 달러를 배로 부풀린다는 비판 속에서도, 정부는 '일하는 대통령'이란 빅쇼를 추진했다. 그나마 아마 처음으로 그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통했던 듯하다. 진보 진영은 원전 산업 확장을 경계하는 소리를 냈지만, 경제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압도했다. 무슨 말인가?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진보 진영의 원론적인 비판은 사람들 마음을 얻기 힘들 것이다.

녹색과 성장의 접점 찾기

이명박 정부가 '녹색'을 기만적 구호로 사용하는 건 사실이다. 여론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을 저지르고 있고, 개발과 성장에 치우친 정책에 '녹색'딱지만 뻔뻔스레 붙이는 일도 자주 한다. 이 상황에서 시민들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정부가 내세우는 '녹색성장'이 허구임을 밝히는 일도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올바른 녹색의 입지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웬걸, 지금 환경운동은 정치적으로 무력하고 생활세계에서도 그렇다. 왜 그런가? 대책은 다각도로 검토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근본주의적 경향을 멀리했으면 좋겠다.

한국의 생태주의는 성장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시각을 고집한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래 '녹색'이란 '성장'과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다분히 근본주의적 주장이다. 성장과 같이 가기 힘든 절대적이고 야생의 녹색 지대도 있지만, '원래' 녹색이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녹색과 성장이 함께 가는 생활의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또 사회구조를 "지역중심의 자립ㆍ자급의 농업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주장에도 근본주의가 스며있다. 농촌을 비롯한 지역중심 사회들이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지만, 근본주의적 생태주의는 사회구조를 전반적으로 자립ㆍ자급적인 농업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건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 농업사회가 언제나 평화로운 것도 아니다.

독일 녹색당은 근본주의적 이론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많은 개혁을 이뤄냈다. 독일이 세계 최고의 재생에너지 기술을 확보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며,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을 2022년까지 폐지한다는 결정도 녹색당 덕택에 가능했다. 녹색당은 중앙 정치권력의 변화도 가져왔고 생활세계도 혁신한 셈이다. 한국의 생태주의도 대중민주주의 차원에서는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오히려 거꾸로다. 한국 생태주의는 과도하게 근본주의적이거나 종교적 처방에 의존하고 있다. 진보적 담론들도 종종 그 처방에 의존하거나 그것을 부추기곤 한다. 물론 윤리적인 태도가 순간적으로 사람들 정서를 깨끗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생태적 태도나 제도를 사회적으로 구축하는 일은 그것보다 어렵고 복잡하다. 이 점에서 근본주의적 경향은 예상 밖으로 큰 문제인데도, 자주 간과된다. 한국 사회에서 가치의 대립이 극심한 이유도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 근본주의나 종교적 영성에 의존하는 일은, 무엇보다 이질적인 집단들의 복잡한 이익과 욕망을 조정하는 민주화 과정과 충돌하기 십상이다.

이론과 대안적 정책 구별을

생태주의자들은 무엇보다 근본주의적인 이론과 대안적 정책을 구별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물론 그 둘을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진보 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중도실용 세력도 차분하게 집권해본 적이 없으니 그 훈련을 할 기회가 없긴 없었다. 그 결과, 진보 진영은 구체적이고도 복잡한 개혁에 대해 말할 때 알게 모르게 근본주의적 이념들에 사로잡힌다. 이 이념들은 충격요법으로는 잠시 도움이 되겠지만, 생활을 바꾸고 정치적 힘을 확장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해로울 수도 있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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