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대출가산금리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후 가장 먼저 대출금리를 낮춘 곳은 기업은행이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자율이 '사채이자'를 방불케 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현금서비스 금리를 최저 수준으로 낮춘 은행도 기업은행이다.
새로운 대출금리체계인 코픽스(COFIX)가 확정 공시되자 마자, 새 대출 상품을 제일 먼저 출시한 곳 역시 기업은행이다.
만약 '리딩뱅크(Leading bank)'의 개념을 규모(가장 큰 은행)가 아닌, 정부정책 방향에 대한 선도 측면에서 따져본다면 지금 기업은행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은행권의 시선은 온통 윤용로(사진) 기업은행장에 쏠려 있다. 금리인하도 그렇고, 현금서비스 이율 인하도 그렇고, 새로운 대출상품 판매도 그렇고, 적어도 정부의 친서민 금융정책과 관련된 이슈에 관한 한 기업은행이 먼저 치고 나가자 은행권으로선 윤 행장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
"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서 확실한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는 호평과 "너무 정부코드만 맞춘다"는 비판이 맞선다.
하지만 좋든 싫든 기업은행이 하면 다른 시중은행들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게 현실. 그래서 은행권에선 '조타수 윤용로'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도 "정부 입장에선 윤 행장이 고마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이 지난 해 금융위기 와중에서 중소기업대출을 늘리고 인력채용에 팔을 걷어 붙일 때만해도 은행권에선 '국책은행이니까'란 반응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 금리인하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하자 기업은행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업은행은 올 초 가장 먼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5%포인트 일괄 인하했다. 당시 한 은행 관계자는 "기업은행이 확실하게 총대를 맨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다른 은행들은 싫어도 금리를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은 기업은행의 뒤를 이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출금리 인하를 발표했다.
기업은행은 뒤 이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금리를 업계 최저수준(연 21.98%)으로 낮췄다. 그리고 17일 코픽스가 발표되자마자, 종전 대출상품보다 최대 0.48%포인트까지 금리를 낮춘 새 대출상품을 출시했다. 한 시중은행 인사는 "일반은행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인하 폭이지만 어쨌든 기업은행이 그렇게 했으니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금리인하 드라이브'를 주도하고 있는 윤 행장의 생각은 어떨까. 윤 행장은 18일 본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금리 인하는 은행수익을 조금 줄이면 가능하다. 혜택을 고객에게 준다면 어느 은행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다만 그 일을 기업은행이 먼저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책은행으로서의 일정 역할도 강조했다. 다만 무작정 정부 정책이라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에 이득이 된다고 판단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 행장은 "기업은행이 주택담보대출금리를 인하하고 다른 은행들이 동참함으로써 고객이자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됐다"며 "이런 것은 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 져야 할 책임"이라고 말했다.
윤 행장은 금리인하가 기업은행의 장기 수익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고 했다. 그는 "서비스 면에서 시중은행과 격차가 있는 기업은행이 보다 많은 고객을 확보하려면 금리인하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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