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온다!(The Koreans Are Coming!)'
지난 9일자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한국을 위한 것이었다. 스포츠섹션에서 피겨여왕 김연아를 집중 소개했고, 패션섹션에서는 뉴욕에 상륙한 한국 패션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 패션과 디자이너를 세계 패션산업의 본무대인 뉴욕에 소개한다는 취지 아래 13억원의 예산을 들여 주최한 패션전시 '컨셉트코리아(Concept Korea)'가 대상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한 작은 거인 한국의 위상은 '한국인들이 온다'는 이 신문 패션기사의 제목만큼이나 선명하게 부각됐다.
키아누 리브스도 참석, 성황 이룬 개막식 파티
12일 밤(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컨셉트코리아의 개막식은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패션전시를 위해서는 한번도 대여된 적이 없다는 명소 뉴욕공립도서관을 수백 명의 인파가 가득 채웠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회장을 비롯해 토미 힐피거, 배우 키아누 리브스, 아티스트 척 클로스 등 문화예술계의 저명인사들도 함께 했다. 6팀의 한국 디자이너들이 참가한 이번 전시는 1990년대 유럽 패션계를 강타한 '벨기에 6인방'처럼 국가적 지원을 받는 빼어난 디자이너들의 조합이라는 아우라를 발산했다.
도서관내에는 컨셉트코리아의 영문이 프로젝트 빔을 통해 벽에 투사됐고 행사장 한쪽에는 퓨전요리의 대가인 장 조지가 한식 퓨전 메뉴를 선보여 참석자들의 호기심을 끌어냈다. '닌자 어쌔신' 을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한 가수 비의 공연도 분위기를 달궜다. 한국 패션은 물론 한식과 대중문화 등 콘텐츠까지 함께 선보이겠다는 주최측의 야심은 파티문화가 발달한 미국사회를 공략하는 데 적절해 보였다.
이례적으로 외국 디자이너들의 전시를 후원한 퍼스텐버그 CFDA 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한국 디자이너들의 창의적인 작업을 미국에 선보이게 돼 기쁘다"며 "향후 양국간 교류를 강화하자"고 밝혔다. CFDA는 세계 패션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로 이번 컨셉트코리아를 공식후원, 패션한류 조성에 한 몫 했다. 유명 아티스트가 재해석한 6팀 6색 한국패션
유명 아티스트가 재해석한 6팀 6색 한국패션
컨셉트코리아의 독특한 전시 방식과 내친 김에 뉴욕컬렉션까지 진출한 디자이너들의 열정도 패션한류의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였다. 14일까지 계속된 전시는 박춘무, 윤원정ㆍ김석원, 이도이, 정구호, 정욱준, 홍승완 등 국내 디자이너의 작업을 외국 유명 아티스트들이 '한류'라는 주제 아래 새로운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유명 포토트래퍼 잭 피어슨이 화보를 촬영해 룩북(Look Bookㆍ화보집)을 제작하고 큐레이터인 독일의 월프레드 딕호프와 설치작가 로즈마리 트로켈이 전시를 맡았다.
박춘무씨는 빛과 속도를 주제로 무채색의 변주를 담은 의상을 내놓았고, 정구호씨는 정교한 오트쿠틔르 감각을 곁들인 아방가르드 작업을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정욱준씨는 지퍼를 열고 닫음에 따라 다른 의상으로 변형되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예술가 척 클로스로부터 "한 벌 사고 싶을 만큼 훌륭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또 이도이씨는 화려한 프린트를 앞세운 빈티지 감각 의상으로 눈길을 모았다.
박춘무와 정구호씨는 이번 전시를 기회로 뉴욕컬렉션에 진출했다. 뉴욕컬렉션 개막일 하루 전인 10일 뉴욕 단독패션쇼를 가진 정구호씨의 패션쇼에는 이서현 전무를 비롯해 제일모직과 제일기획의 고위 간부들이 총출동해 현지 패션가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상투적인 화보집 등은 과제로
전시 개막일이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막일과 겹쳐 언론의 관심이 다소 희석됐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는 글로벌 패션계가 주목하는 뉴욕패션위크 기간 중 패션한류를 알리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당초 목표했던 한국 패션의 역동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현지 패션 관계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했던 룩북은 상투적인 편집에 의해 제 빛을 발하지 못했다.
또한 룩북의 화보 중 특정 디자이너의 화보만 다른 사람이 촬영한 것으로 대체되고 이로 인해 디자이너들 사이에 "균등 기회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불신을 낳은 것이나, 작품 전시에 디자이너들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 등은 문제로 지적된다. CFDA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화한 삼성의 후원 여부를 문광부가 명시하지 않은 것도 의문이다.
유병한 문광부 문화콘텐츠산업실장은 "첫 작업이기 때문에 다소 시행착오는 있다"며 "향후에도 한국 디자이너들이 세계와 소통하면서 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국가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뉴욕=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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