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게. 고생은 안 했는가?"
작가 한승원(71)씨가 반갑게 맞는다.
10여 년 전 전화로 원고를 청탁한 적이 있지만, 직접 만난 것은 처음인데도 오랜 지인과 재회한 듯 다정하게 맞아준다. 전남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 득량만의 숨 깊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야산 기슭에 그의 거처와 집필실이 있다.
도시 생활의 긴장 속에서 위장병과 부정맥으로 고생하다 이곳으로 터를 옮긴 것이 1997년이다. 아무리 고향으로 간다지만, 이익과 재미와 유혹이 많은 서울 생활을 접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그는 돌아온 고향에서 이내 문화의 상징이 됐고 그의 귀향을 계기로 이 지역이 우뚝한 작가를 여럿 배출한 문학의 고장이라는 사실 또한 점차 알려지더니 이제는 장흥이 한국 현대 문학의 일번지로 거듭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장흥은 한반도에서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 중 하나니, 이즈음 장흥으로 여행을 떠나면 봄이 오는 길목에서 문학의 향취에 젖는 나그네라도 될 것 같다.
송기숙, 이청준, 한승원씨는 장흥 출신 작가 3인방이다. 송기숙(75)씨는 장흥 인근 화순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승원씨와 같은 해 태어난 이청준씨는 2008년 작고했다. 그러니 문학의 향훈을 찾는 장흥 방문객은 아무래도 한승원씨가 맞게 된다.
그는 해산토굴(海山土窟)이라는 이름의 집필실과, 바로 아래에 있는 '달 긷는 집'이라는 이름의 문학관에서 멀리서 찾아온 독자들을 반갑게 맞고 자신과 장흥의 문학세계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출생지는 아니다. 생가는 훨씬 남쪽인 회진면 신덕리에 있는데 안내판이 없어 찾기가 쉽지 않다.
한승원씨는 데뷔작 '목선'을 비롯해 '앞산도 첩첩하고' '그 바다 끓며 넘치며' '새터말 사람들' '포구' '불의 딸' 등에서 고향을 배경으로 삶의 애환을 그렸는데 마을에 들어서면 작품 주인공들이 모두 나타날 것 같다. 소설에 그토록 많이 나오는 천관산, 덕도, 회진포구 등도 모두 실제 지명이다.
이청준씨가 태어난 진목리는 한승원씨의 생가에서 승용차로 20분 안팎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으로 역시 회진면에 속한다.
너른 들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마을로 집 찾기도 쉽다. 기와를 얹고 제법 너른 마당을 둔 생가로 들어서면 어쩐지 가슴이 저리면서 그가 쓴 작품의 비극성이 몸으로 전해진다. 2년 전 폐암으로 사망한 그의 묘소 역시 마을과 가깝다.
한승원씨의 생가로 가는 길에는 영화 '천년학' 촬영지가 있다.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등을 모은 소설집이 바로 <천년학> 인데 임권택 감독이 이곳에서 그것을 영화로 찍었다. 천년학>
촬영지에는 '서편제' '선학동 나그네'에 나왔을 것 같은 주막이 복원돼 있으며 그 앞으로는 너른 개펄이 있는데 나이 든 어머니, 할머니들이 꼬막과 바지락을 캐고 있다. 이들이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개펄에서 보여주는 강인한 생활력이, 도시생활에서 쉬 지치는 젊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송기숙씨의 생가는 용산면 포곡리에 있는데 한승원씨의 생가와 마찬가지로 찾기가 쉽지 않다. 그는 대표작 '자랏골의 비가'에서 자랏골을 '소쿠리에 밤알 담아 흔들어 놓은 골로 안쪽에 옹기종기 집이 몰려 있는' 마을로 표현했는데 이곳 포곡리가 꼭 그렇다. 이야기의 중요 모티프인 '양문이 묏등'도 포곡리에 있다. 청기와를 얹은 그의 집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농가다.
송기숙씨와 한승원씨의 인연은 고교 시절로 돌아간다. 두 사람은 장흥고등학교 문예반 선후배로 함께 활동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지었다. 고향을 떠나 있는 송기숙씨는 얼마 전 소장 도서 3,000권을 장흥군에 기증함으로써 고향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들 아래 세대의 장흥 출신 작가로는 이승우(51)씨가 있다. 그 역시 소설에 고향 이야기를 썼는데 단편 '정남진행(行)'과 '풍장-정남진행2'가 대표적이다.
'정남진'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만 서울 정동쪽의 바다 마을이 정동진이듯 정남쪽 바다 마을을 정남진이라 하는 것이다. 행정구역으로는 관산읍 신동리인데 바로 작가의 고향이다.
이승우씨의 작품에 나오는 정남진은 단순한 바다 마을이 아니다. 크든 작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에 따른 죄의식을 씻는 곳이 바로 정남진이다.
'풍장-정남진행2'에서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을 맞는 가슴앓이섬이 나온다. 그 섬, 실제로 정남진에 있다. 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아 그냥 바윗덩이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어머니의 처진 젖가슴 모양을 하고 있는데 한 주민은 "풍랑이 심한 바다여서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하기 때문에 가슴앓이섬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지금은 제주에서 살고 있는 이대흠(42)씨 역시 장흥 출신이다. 시인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그는 특히 장편 '청앵'에서 댐 건설에 따른 泳宕湧?사연과 마을의 변화를 구수한 사투리로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그가 구사한 토속어는 이문구, 송기숙씨의 그것에 필적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대단한 칭찬이다.
이들을 포함해 장흥 출신 문인은 100명을 넘는다는 게 장흥 사람들의 설명이다. 김석중 장흥 별곡문학동인회 회장은 "워낙 쟁쟁한 문인이 많아 웬만큼 글을 써서는 명함 내밀기 힘들다"는 말로 문학 동네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장흥은 왜 이렇게 작가를 많이 배출했을까. 한승원씨는 그 한 이유를 역사성에서 찾았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농민군은 우금치에서 일본군에 대패하고 장흥으로 숨어 들었다가 전열을 정비, 장흥 석대들판에서 일본군과 다시 격돌했으나 끝내 전멸당하다시피 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서는 군경과 빨치산이 충돌해 주민들이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한이 깊으니, 맺힌 게 많으니 무엇인가를 토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바로 문학이라는 것이다.
한승원씨만 해도 아버지가 천도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천도교 학교의 교사를 했으니 동학 혹은 천도교와 인연이 깊다. 그는 "나는 동학에 빚이 있다"며 "내가 '동학제'를, 송기숙씨가 '녹두장군'을 쓴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설을 읽고 떠난 장흥에는, 여느 여행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운이 있다. 작가를 만날 수 있고 작가의 집을 방문할 수 있으며 작품 무대를 살펴볼 수 있다. 장흥 작가의 작품에 애환과 슬픔과 사연이 적지 않기에 아련하면서도 가슴 떨리는 여행을 할 수 있다.
■ 여행수첩
장흥으로 문학 여행을 떠나려면 먼저 작가들의 대표작 정도는 읽는 게 좋다. 경치를 즐기는 여행이나 체험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들의 작품을 읽지 않고는 여행에서 감동을 얻을 수 없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낄 수 있다.
현지에서는 동선을 잘 짜야 한다. 장흥군청 등에서 관광지도를 얻어 참고하면 좋다. (061)860-0224. 송기숙 생가와 한승원 생가는 정확한 표지판이 없어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천관산 기슭의 문학공원은 문학을 테마로 한 공원이다. 구상, 문병란, 최일남, 이호철, 차범석, 김병익씨 등 유명 문인의 작품과 육필 원고를 보관한 15m 높이의 문탑(文塔)을 비롯해 지역 주민들이 쌓은 돌탑이 많다. 인근 천관문학관은 전시실, 세미나실, 창작실 등을 갖추고 국내외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061)860-0457
장흥=글ㆍ사진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 장흥의 먹거리·들를 곳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1993년 출판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에서 해남과 강진을 남도 답사 일번지로 소개한 뒤 이 지역으로 여행객과 답사객이 몰리자 인근 장흥의 주민들이 무척 서운해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의>
이웃이 잘 돼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장흥이 해남과 강진 못지 않은데도 사람들이 그걸 몰라주니 섭섭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장흥은 과연 보고 체험하고 쉬고 먹을 것이 여느 지역 못지 않았다. 억새와 기암이 조화를 이룬 천관산, 철쭉 군락으로 유명한 제암산, 여인의 치맛자락 같은 억불산 등은 산행의 즐거움과 멋진 경치를 선사한다.
그 산의 골짜기와 바닷가에는 체험마을들이 있어서 관광객에게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준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삼층석탑 및 석등 등 국보를 안고 있는 천년 고찰 보림사와, 장흥 위씨 집성촌으로 한옥이 모여 있는 방촌마을에서는 고장의 깊은 연륜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날이 쌀쌀할 때는 식도락 여행이 제격이다. 겨울 바다와 차진 개펄에서 나는 매생이, 키조개, 굴 등은 추운 날씨에 맛이 깊다.
매생이 산지로 유명한 곳은 대덕읍 내저마을이다. 마을의 길 이름을 매생이길로 정했을 정도다. 매생이는 12월 중순부터 2월말까지 채취하기 때문에 지금이 끝물이다. 그러니 내저마을의 매생이를 먹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이곳에서 나는 매생이는 특유의 향과 부드러운 촉감이 일품이다. 철분, 칼륨 등 무기질이 많고 비타민 A와 C까지 풍부하니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러나 채취를 추운 계절에 하다 보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눈 내리고 바람 몰아쳐도 작업을 중단할 수는 없다. 이번 겨울에는 강추위 때문에 발에 불어 있는 매생이가 얼었고 그 바람에 손으로 바닷물을 끼얹어 매생이를 녹여가면서 채취했다.
생산 과정에서 겪는 이런 고생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니 피곤함을 잊을 수 있다. 내저마을엔 매생이를 직접 소매하거나 택배로 판매하는 곳이 많다.
안양면 수문리는 키조개의 산지다. '키조개의 메카'라는 표지판이 마을에 붙어 있다. 20여년 전부터 마을 앞 득량만 해저 4~10m에 봄, 가을로 종패를 이식해 3년을 키워 출하하고 있다.
장영식 흥일수산 대표는 "키조개 종패를 이식, 바다에서 기른 뒤 출하하는 것은 우리가 전국 최초"라고 말했다. 키조개는 회, 무침, 구이 등 다양한 방식으로 먹을 수 있는데 장 대표는 향이 좋은 키조개죽을 특히 권한다. 1년에 500만 마리 정도를 생산해 절반 가량을 일본으로 수출한다.
수문리는 한승원씨의 집필실과 가깝고 바닷가에 문학산책로도 설치돼 있다. 마을을 지나 보성으로 넘어간 뒤 그 유명한 차 밭을 구경할 수도 있다.
수문리에서 시작해 남쪽 회진에 이르는 장흥 동쪽 해안에서는 기름진 뻘을 먹고 자란 낙지가 많이 난다. 낙지는 윤기가 흐르고 쫄깃해 맛이 좋다.
용산면 남포마을에는 자연산 굴이 많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를 이 마을에서 촬영했는데 바로 앞 바다에는 소등도라는 예쁜 섬이 있다. 수북이 쌓인 굴 껍질을 보며 이 갯마을이 자연산 굴의 산지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불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굴을 보면 입 안에 침이 돈다. 마을 안은 물론, 마을을 벗어나 남쪽으로 한참을 달려가도 굴 구이 음식점이 이어진다.
장흥 특산물을 가장 편하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장흥읍 예양리에 있는 토요시장이다. 시장의 일부는 상설로 열리지만, 일부는 2일과 7일 그리고 토요일에만 열린다.
생선, 표고버섯 등 지역 특산물과, 짚 공예품 등 다른 시장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 많아 장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장의 특징을 제대로 보려면 아무래도 토요일에 가는 게 좋다.
이날은 오전 10시부터 각설이 공연, 풍물놀이 등 여러 행사가 열려 흥을 돋운다. 65세 이상 할머니들이 집에서 기른 배추, 시금치 등 채소를 내다 파는 '할머니장'도 바로 토요일에 열린다.
장흥의 또 다른 특산물 한우를 토요시장에서 구입해 부근 식당에서 약간의 비용을 낸 뒤 구워 먹을 수도 있다. 장흥 한우는 혈통 관리를 잘했기 때문에 육질이 매우 좋다고 장흥 사람들은 자랑한다.
장흥=글ㆍ사진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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