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 워밍업 땐 제자 옆에 꼭 붙어 발맞춰 빙판을 지친다. 앞서 경쟁국 선수들의 레이스를 보고 나면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기도 한다.
불가항력 줄담배로 속은 더 타 들어가지만, 레이스 후 환히 웃는 제자 얼굴 한번이면 목을 조르던 시름이 단숨에 사라진다.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개막 후 반복된 김관규(43ㆍ용인시청) 스피드스케이팅대표팀 감독의 하루다.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가 전부였던 스피드스케이팅대표팀은 모태범(21ㆍ한국체대)이 18일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1,000m 결승에서 은메달을 추가함에 따라 이번 대회에서만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를 쓸어 담았다.
김관규 감독이 이끌고 있는 스피드스케이팀대표팀의 깜짝 성적은 이날 현재 한국선수단이 종합 3위(금 3개, 은 2개)를 달리고 있는 바탕이 됐다. 2004년 부임 후 6년 만에 금도끼, 은도끼를 찍어내는 산신령이 된 김 감독. 미다스의 '손'이 아닌 '속'을 들여다봤다.
지옥훈련, 불만의 구실을 없애다
누구는 번개머리에 또 누구는 피어싱에…. 같은 구석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스피드스케이팅대표팀의 현주소다. 골치가 띵할 법도 하지만, 김 감독은 그냥 웃었다. "신세대잖아요. 애들 다 착해요."
김 감독은 선수 개개인의 차이를 최대한 인정했다. 대신 훈련만은 예외였다. 새벽 5시30분부터 다시 별이 보일 때까지 체력훈련을 강행했다. 선수 시절 '불암산(태릉선수촌 인근) 말(馬)'로 불렸던 김 감독은 자신보다 약한 제자를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연일 초주검이 된 선수들은 고함을 지르고 애꿎은 벽에다 주먹질을 하기도 했지만, 훈련을 거르는 일은 일절 없었다. 그들에게 김 감독은 '폼생폼사'를 존중하고, 집합 대신 일대일로 귀를 기울이는 별종 스승. 훈련에 불만을 나타낼 구실이 없었다.
열여섯 손가락, 깨물면 다 아프다
이번 대회 빙속대표팀은 남녀 각각 8명. 김 감독은 "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애들인데, 더 잘할 수 있는 애들인데…"라며 입맛을 다셨다. 메달리스트 외에도 다같이 고생한 제자들이 눈에 밟힐 터.
유달리 이변의 주인공이 많았던 것도 16명 전원을 껴안는 김 감독의 리더십 때문일지 모른다. "믿기 힘들 만큼 기쁘지만, 이번에 성적이 안 좋은 애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짠합니다."
김 감독은 18일(한국시간) 남자 1,000m 은메달 주인공 모태범(21ㆍ한국체대)과 하이파이브한 뒤 5번째 올림픽에서도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한 이규혁(32ㆍ서울시청)을 말없이 끌어안았다.
나랑 내기 하나 할까
올림픽 전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여자 500m 금메달리스트 이상화(21ㆍ한국체대)에겐 "33초대를 뛰면 내가 스케이트 신고 들어가서 39초를 뛰마"라고 툭 던졌다. 메달 얘기는 꼭꼭 숨겼다.
마음에 짐을 줄 만한 말은 삼가고 연습처럼 실전에 임하도록 동기를 유발했다. 모태범이 남자 500m 1차 레이스 2위로 메달에 가까이 다가섰을 때도 '2차에서 몇 초를 뛰면 금메달도 가능'이란 말 대신 "못해도 좋으니 하던 대로 스퍼트까지 힘내라"고 주문했다.
"딸 수 있을 때 왕창 따야 돼요. 그래야 스피드스케이팅이 삽니다." 선수들 앞에서는 메달 얘기라면 입도 뻥긋 안 하던 김 감독은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 문을 나선 뒤에야 '본심'을 드러냈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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