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 대통령은 네 번의 예언을 적중시켰다. 2008~2009 NBA챔피언 결정전 당시 LA레이커스, 지난해 43회 슈퍼볼에서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우승을 알아맞혔다. 2009 NCAA(전미 대학농구선수권 토너먼트)에서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우승을, 이달 초 44회 슈퍼볼에서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우승을 알아맞혔다.
승부 맞히는 오바마의 분별
그가 스포츠 승부나 인간에 대한 분별과 이해에 뛰어나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일이다. 특히 객관적으로 열세라던 뉴올리언스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절망적 피해를 당한 지역의 팀이며, 그 팀이 선수들과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예상 외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스피드 스케이팅의 쾌거는 놀랍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수영에서 금메달을 따 큰 벽을 넘은 한국스포츠는 이번에 또 하나의 높은 벽을 넘었다. '선진국형 스포츠'의 이런 성공을 우리는 얼마나 예상하고 있었을까.
그 요인으로는 1988 서울올림픽 이후에 태어난 세대의 신체적 정신적 자신감, 경제수준 향상에 힘입은 투자 확대를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의 퓨전 등 독특한 훈련방식, 스포츠과학의 발전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후적 분석일 뿐이다. 우리는 대체로 사회의 내밀한 변화에 어둡다. 발을 딛고 사는 '지금, 여기'의 저류에 무엇이 흐르고 무엇이 형성되고 있는지 그 변화와 생성의 기호와 징후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알몸 졸업빵'에 대해서도 기성세대는 실상을 알지 못하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옷을 모두 벗기고 벌을 주고 머리에 케첩을 칠하거나 바다에 빠뜨리기까지 하는 선배들의 횡포는 예상 외로 심각하다. 자신들이 당한 대로 했다는 가해자들에게는 죄의식이 없어 보인다는데, 후배들을 괴롭히고 즐기는 행태는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스포츠를 끌어들여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스포츠야말로 인간들 사이의 유력한 소통도구이며 강력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곧 개봉되는 영화 <인빅투스> 는 존 칼린의 소설 가 원작으로, 흑백 화합을 통해 새로운 남아공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23년간 옥살이를 하고 출감한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의 국기(國技) 럭비를 통해 흑백 화합에 성공했다. 그는 백인 일색인 국가대표팀 '스프링복스'의 선수들을 만나 흑인을 똑같은 국민으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했고, 1995년 럭비 월드컵 유치에 성공했다. 인빅투스>
스프링복스는 자신들을 야유하며 부르던 흑인들의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승을 차지했다. 증오와 반목에서 용서와 화해로 남아공이 달라져가는 결정적 계기였다. 단순히 승리만 추구하던 팀은 화합과 소통이라는 목표가 더해지면서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한 것이다.
원작 제목 'Playing the Enemy'는 적의 역할을 맡는다, 적이 돼 본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易地思之(역지사지)다. 백인은 흑인이 돼 보고 흑인은 백인이 돼 보는 것이다. 적이 돼 보는 일의 결정판인 존 하워드 그리핀의 는 흑인으로 분장하고 7주 동안 미국 남부지역에서 생활한 백인의 수기이다. 이 경험 이후 그리핀은 흑인 편에 서서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세상은 스포츠같지 않다지만
인간의 삶과 사회의 발전이 스포츠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스포츠에서와 같은 역전승을 삶에서는 자주 볼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역전승이나 추월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스포츠에서처럼 모두가 규칙을 준수하는 것도 바라기 어렵고, 위반자에게 강력하게 퇴장을 명하는 심판도 없다.
그러나 남이 돼 볼 수는 있다. 남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남의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은 생각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졸업빵의 가해자들은 다시 피해자가 돼 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오바마도 남이 돼 본 덕분에 승부를 정확하게 알아맞힐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임철순 주필 yc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