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슈퍼모델 지젤 번천(30)이 최근 집안 욕조에서 첫 아들을 낳아 화제가 됐다. 가정분만이자 수중(水中)분만이다. 물속에 쪼그리고 앉으면 골반이 잘 벌어져 굳이 회음부 절개를 할 필요가 없다. 따뜻한 물은 산모의 근육을 이완시켜 통증과 긴장을 줄여준다. 아기에게도 편안하다. '인권분만' 개념을 창시한 프랑스 의사 르봐이예에 따르면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공기가 처음 폐에 들어가면서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첫 울음을 터뜨린다. 밀도 및 온도가 자궁 속 양수와 비슷한 물속은 아기에게 친숙한 환경을 제공한다.
▦ 수중분만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중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나중에 제사장이 됐다고 한다. 고대 크레타문명의 미노스인들은 신전 안에 마련된 해수(海水) 풀에서 아이를 낳았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바닷물이 얕게 고인 곳이나 낮은 강물에서 출산했다. 소련 과학자 차르코프스키는 1960년대 현대적 수중분만의 개념을 체계화했다. 그는 조산인 자신의 딸을 수중에서 낳아 건강하게 키웠다. 국내에선 뮤지컬 배우 최정원(41)이 99년 처음 시도했고, 탤런트 채시라(42)도 2001년 수중분만으로 첫 딸을 낳았다.
▦ 지젤 번천은 "출산 중 의식이 깨어 있고 침착하고 싶었다. 약물은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마취제를 이용한 무통분만이 일반화한 현실에서 미녀 모델의 가정분만 선택은 의외일 수도 있지만, 의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첨단장비와 유도 분만제 등을 이용한 출산의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예컨대 어머니가 출산 때 진통제를 사용한 사람들은 나중에 마약중독자가 될 위험이 더 크다. 겸자 등 기계적 장치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자살을 할 경우에도 총기를 쓰거나 달리는 열차에 뛰어드는 등 기계적 수단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출산 과정에서 의료적 개입이 많을수록 폭력성이 커진다는 보고도 있다.
▦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여성들은 남편이 마당에서 목욕물을 데우고 친정 어머니나 산파가 돕는 가운데 앉거나 서는 등 편안한 자세로 애를 낳았다. 가족들이 생명 탄생의 숭고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가족의 축제'였다. 반면 현대식 병원은 '출산공장'이다. 수십 명의 임신부들을 일자형 침대에 눕혀놓고 힘주기를 강요한다. 진통이 조금만 길어지면 약물을 투여하고 제왕절개를 남발한다. 남편도 가족도 없는 공간에서 두려움과 공포 속에 낳은 아기는 즉시 엄마와 격리된다. 수중분만이 아니어도 좋다. 아이와 산모가 행복할 수 있는 출산문화가 그립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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