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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차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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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차 한잔

입력
2010.02.1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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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핀 매화 한 송이 똑, 따와 차 한 잔 우렸습니다. 꽃에게 미안한 일이었습니다만 겨우내 텁텁해진 입 속 가득 가장 먼저 당도한 봄을 맛보고 싶었습니다. 매화차를 우려내는 것은 간단합니다. 찻잔에 더운 물을 붓고 꽃 한 송이 띄워놓으면 그만입니다. 물의 따스함에 오므린 다섯 장의 꽃잎들이 차례차례 기지개를 켜고 매화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옵니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신 적이 있는지요? 꽃을 꽃이라 생각하면 볼 수 없지만 가까이, 세세히 들여다보면 꽃 속에는 매화의 향기를 만드는 수십 개의 손들이 숨어 있습니다. 색깔을 빚는 신의 손 같기도 하고 향기를 연주하는 음표 같기도 합니다. 꽃이 꽃의 이름으로 존재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것들이 꽃 속에 숨어있습니다. 암술, 수술, 꽃잎, 향기, 색깔 말고도 꽃 한 송이가 피기 위해 꼬박 한 해가 필요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비와 바람, 구름과 눈보라, 햇살과 그늘이 꽃을 만듭니다. 사람의 일 중에서 꽃과 닮은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 사랑 참 쉽게 이야기합니다만 사랑을 심고 사랑을 꽃피우기 위해서도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 제일 뜨거운 것이 사람의 눈물일 것입니다. 눈물 없이 피는 꽃도 없고 눈물 없이 피는 사랑도 없습니다. 은현리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 속에 차 한 잔 마십니다. 그리운 당신, 저와 함께 차 한 잔 하시렵니까?

시인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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