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을 다 읽었을 때 새벽 두부장수의 요령소리가 들렸다, 라는 표현을 나는 사랑한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그 해 항도 I사범학교에 부임한 국어교사이자 문학도였던 나는 매달 잡지를 열심히 읽곤 했는데, '새벽'(1960년 11월호)도 그 중의 하나였다. 600매 분량의 중편 <광장> 을 전재하면서 편집후기는 전후 한국문단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문제작이라 했고, 작가 자신은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거론했다. 이 새 공화국을 일러 제2공화국이라 하거니와 문학이 감히 새 공화국의 보람을 거론한 것은 아마도 <광장> 이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이 사실은 자주 음미될 성질의 것인 바,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하다. 광장> 광장> 광장>
체제와 문학의 관계가 그 하나. 원리적으로는 어떤 문학(예술)도 반체제적이 아닐 수 없다. 혁명 그것처럼 현실부정을 기본항으로 하기에 혁명가와 문인은 이 점에서 한치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일단 혁명이 성공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혁명가는 관료화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인데, 체제 유지의 몫이 그의 것인 까닭이다. 이에 반해 문인은 그렇게 성립된 체제를 부정할 역설적 운명에 놓이게 마련이다. <광장> 은 그 운명을 통렬히 깨치기 직전의 순수성으로 규정된다. 위로부터의, 또는 아래로부터의 혁명도 아닌 '옆으로부터의 혁명'에서 그 순수성이 왔다. 시인은 이를 두고 "하, 그림자가 없다"(김수영)라고 했다. 광장>
다른 하나는, 이 점이 중요한데, 불과 1년 만에 4ㆍ19는 5ㆍ16군사혁명으로 공중분해되었다는 사실. 주체성 부재의 4ㆍ19로서는 혁명 자체를 송두리째 도적맞은 형국이었지만, 이 사건은 4ㆍ19를 영원한 자유의 표상으로 승화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것이 이 나라 문학의 사건성인 것은 이른바 4ㆍ19세대의 탄생에서 왔다.
4ㆍ19세대의 탄생 장면
정작 4ㆍ19를 체험한 세대의 시선은 어떠할까. 각 세대는 저마다의 고유한 체험을 이루며 진정한 문학적 감수성의 근거도 여기에서 말미암는 것이라면 다른 세대들은, 4ㆍ19를 관념상에서는 이해할 수는 있어도 체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광장> 의 작가의 시선도 국외자의 것이며, 김수영이나 김춘수 등이 4ㆍ19에 큰 충격을 받아 스스로의 진로 수정에 나선 것도 사정은 같은 것이다. 광장>
4ㆍ19세대의 김현은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적어 마지않았다. "내 육체적 나이는 늙었지만, 내 정신적 나이는 언제나 1960년의 18세에 멈춰 있었다. 나는 거의 언제나 4ㆍ19세대로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라고. 이를 두고 국외자들은 피장파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전후세대나 유신세대 또는 80년 광주세대의 시선에서 보면 이것은 이해할 수는 있어도 체감할 수는 없는 사안이다. 그는 이것을 "씁쓸한 인식이지만 즐거운 인식"이라 요약했다. 씁쓸함이란 그가 유신세대나 광주세대의 사유 양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서 왔다. 관념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체감으로서의 인식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니까 씁쓸할 수밖에 없다. 한편 "즐거운 인식"인 까닭을 그는 이렇게 매우 우아하게 말했다. "나와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한 데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다른 어느 세대보다 4ㆍ19세대의 강점이 따로 있다는 이 자부심이야말로 60년대 문학을 이룩한 원동력이었다. 유신세대나 광주세대를 겪은 뒤에도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 4ㆍ19에 있었다는 이 자부심의 근거는 어디에서 오는가. 또 그것은 과연 보편성을 띤 것일까.
이 두 가지 물음은 60년대 문학 속에 그 해답이 잠겨 있다. 곧 글쓰기의 내면화가 이에 해당된다. 그것은 4ㆍ19가 다른 어느 분야보다 문학적인 영역임을 말하는 장면이라는 사실, 바로 여기에서 4ㆍ19의 문학사적 사건성이 온다.
4ㆍ19세대는 누구인가. "대학에 들어가자 4ㆍ19가 났고 5ㆍ16까지는 자유스런 분위기였다. 그때는 이호철, 손창섭, 서기원의 것이 판을 쳤고, 그런 것에 걸맞게 대학 4년이 문학적이었으니"(박태순)라고 했을 때 주목되는 것은 '대학 4년=한국문학적'이라는 인식이다. "우리처럼 한 해에 일곱 명씩이나 등단한 것은 유사 이래 처음이지. 4ㆍ19로 얻은 만족감, 그런 정신적인 충일감과 아울러 번역 작품이 붐을 이루었는데 그것을 소화하는 자신 비슷한 것이 그때 상황이었지"(김현)라고 말했을 때('형성' 1968년 봄호) 주목되는 것은 4ㆍ19와 외국문학적인 것의 관계항이었다. 이청준(독문과), 박태순(영문과), 김승옥(불문과), 김현(불문과) 등으로 대표되는 이 사인방은 순종 한글세대이자 토마스 만, 포크너, 다자이 오사무, 사르트르 등에 각기 대응한다고 스스로 자부했는 바, 이를 양 ?낮?하여 한국문단에 관여했다. 이 순간 한국문학사는 전환점에 놓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선험적 문학과 선험적 가난
순종 한글세대로서 세계문학을 소화할 수 있다고 자부했을 때의 4ㆍ19세대의 그다움은 그 실천에서 찾아진다. 실천이란 새삼 무엇이뇨. 문학적인 것을 절대시하지 않고도 여기에 온몸을 바칠 수 있겠는가. 문학적인 것을 종교적 수준으로 인식함이야말로 4ㆍ19세대의 그다움인데, 이러한 주장을 세운 앞잡이의 하나가 김현이다.
그는 당돌하게도 이렇게 단언했다. "여하튼 20세기 초기에 얻어진 유럽대륙의 불온한 공기를 나는 내 자신의 내부 속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거기에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1969)라고. 그것은 그가 도취한 프랑스 문학을 '선험적 상태'로 받아들였음을 뜻한다. '프랑스문학=문학'의 도식이 선험적으로 주어졌기에 그 외의 어떤 '문학적인 것'도 달리 있을 수 없다는 것. 이는 종교에 준하는 절대성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선험적인 것으로서의 문학관은 '짚신도 구두도 신발이다'라는 명제를 용인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을 그에게 가르쳐준 선배가 영문학의 송욱이었다.
송욱이 엘리엇과 보들레르를 두 축으로 하여 한국시를 진단함에 멈추었다면 김현은 '반향과 마력'으로 요약되는 울림 중심의 프랑스시 쪽에 섰다. 김수영과 김춘수를 저울질하면서 마침내 후자에 승부처를 놓았다. 그것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험적인 것인 까닭이다.
선험적 문학과 선험적 가난의 완결성
이러한 선험적 규정이 종교에 육박하는 절대성인 만큼 온몸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두고 실천력이라 부를 것이다. 그것은 종교의 교단과 흡사한 것인 바, 그 현장은 '69문학'(1968), '문학과 지성'(1970)으로 나타났다. 목표는 선험적 문학의 건설에 있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 두 가지 늪을 넘어서야 했다. 샤머니즘이 그 첫 번째요, 참여파가 그 다음이었다.
선험적인 것을 무화시키는 샤머니즘의 극복 없이는 또 참여파의 거친 목소리를 물리치지 않으면 '짚신도 구두도 신발이다'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김현은 그 가능성을 박상륭과 이청준에게서 찾아냈다. 전자에서 그는 김동리식 지방성 샤머니즘의 세계화 현상을 보았고, 후자에서 '선험적 가난'을 발견했다. 자기의 선험적인 문학관이 또다른 두 선험적인 것의 발견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그렇긴 하나 그 선험적인 것의 범주는 각각 달랐다. 그 중에서도 <눈길> (1977)의 작가 이청준이야말로 김현으로서는 감당하기 난처한 타자였다. '선험적 문학'에 대한 '선험적 가난'이었기 때문. 이 두 선험적인 것이 드러나는 현장이 바로 이 나라 산문계 문학의 대작 <당신들의 천국> (1975)이다. 당신들의> 눈길>
지식인이자 미감아인 등장인물 이상욱을 김현은 여지없이 분석할 수 있었지만 정작 진짜 나병환자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선험적 가난'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 김현의 시선이 아름다운 것은 두 선험적인 것의 공존에 대한 가능성에서 온다. 이 공존은 4ㆍ19세대의 문학적 완결성이라 부를 만한데, 그것이 무지개 빛을 뿜어내고 있기에 그러하다.
■약력
▦1936년 경남 진영 출생 ▦서울대 사범대 국문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석ㆍ박사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1968~2001년 서울대 인문대 교수 ▦저서 <한국 근대문예비평사 연구> <이광수와 그의 시대> <임화 연구> <비평가의 사계> 등 120여 권 ▦팔봉비평문학상, 요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 ▦현 명지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비평가의> 임화> 이광수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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