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전세계 관객들을 흥분시킨 명장이다. 그의 신작 '러블리 본즈'에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1987년 뉴질랜드에서 '고무인간의 최후'로 시작된 잭슨의 필모그래피를 꿰고 있는 마니아라면 심장 박동이 더욱 거세질 듯 하다. 그의 최고 작품 중 하나로 인식되는 '천상의 피조물'(1994)처럼 소녀가 등장하고, 살인이 주요 소재로 쓰이기 때문이다.
열네 살 소녀가 살해된다. 회계사 아버지 잭(마크 월버그)과 현명한 어머니 에비게일(레이첼 와이즈) 밑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자라던 수지(시얼샤 로넌). 첫사랑의 시작에 가슴이 달뜨던, 인생이 마냥 반짝거리리라 믿었던 소녀는 귀가 중에 목숨을 잃는다. 범인은 한없이 친절해 보이는 이웃집 중년 남성 하비(스탠리 투치). 미국을 떠돌며 수 차례 피를 뿌리고 다닌 인면수심의 흉악범이다. 잭은 살인마를 찾아 동분서주하고, 수지의 가족들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연쇄 살인이 등장하고, 가슴 처절한 추격이 이어지지만 이 영화, 전통 스릴러는 아니다. 판타지영화이면서 십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이고 가족의 유대를 다루기도 한다.
수지의 내레이션이 영화를 이끈다. 수지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살인범에 대한 증오,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에 천상으로 떠나지 못한다. 지상을 내려다보며 가슴이 찢어지기도 하고 벅차하기도 한다. 살아서 실감하지 못했던 뜨거운 가족애를 느끼고, 연쇄 살인범의 극악무도한 범죄 행각을 낱낱이 지켜보기도 한다. 수지의 불행한 죽음 때문에 가족은 붕괴 직전까지 가지만, 역설적으로 서로에 대한 진한 사랑을 확인한다.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된 천상이 눈을 희롱한다. 새로운 범죄를 꾸미는 하비의 행각과 그를 잡으려는 수지 가족의 활약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마음이 먹먹하면서도 범인의 운명은 어찌 될지 조마조마하다. 판타지와 스릴러와 휴머니즘을 이어 붙이는 솜씨가 매끄럽다. 역시 잭슨이라는 탄성이 나올 만하다. 이물감도 있다.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결말은 전형적인 권선징악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낯설 듯 하다.
2002년 미국에서 나온 앨리스 세볼드의 동명 소설을 밑그림 삼았다. 빼어나지 않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은 이 영화는 베스트셀러 원작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외신들은 원작의 참신함에 못 미친다는 혹평이 주를 이룬다. 미국 연예주간지 버라이어티는 "천상에 대한 과시적인 표현이 인물들의 정서적 결합을 훼손시킨다… 예술적으로 아주 큰 실망"이라고 보도했다.
제목 '러블리 본즈'(Lovely Bones)는 죽음이나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지는 사람들 간의 유대를 가리킨다. 25일 개봉, 15세 관람 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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