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 하나면 다 되는 디지털 세상, 아날로그의 부지런함 잊지 않기를
친정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휴대전화를 새로 장만하셨다.
아버지는 전화로 얘기해도 될 걸 굳이 문자메시지로 보내라고 하신다. 문자메시지 보내고 받는 방법을 배우신 모양이다. 휴대전화 사진 촬영 방법을 가르쳐 드렸더니 어머니는 손자 사진을 찍겠다며 연습에 열심이시다.
솔직히 두 분이 휴대전화 쓰시는 모습을 보면 살짝 어색하다. 버튼 몇 개 누르면 되는 간단한 사용법을 그렇게 낯설어 하실 수가 없다. 며칠 연습해도 휴대전화 폴더를 열 때마다 여전히 긴장하시는 눈빛이 역력하다.
아이는 정반대다. 컴퓨터와 휴대전화 작동시키는 걸 몇 번 보여줬더니 이젠 혼자서도 척척 켜고 받는다. 할머니에게 "함무, 이여케 하는 거야"라며 되레 가르쳐드린다.
오디오 리모콘 카메라에도 금새 익숙해졌는가 하면, 새로운 기기를 볼 때마다 꼭 만져봐야 직성이 풀린다. 두 돌짜리가 이 정도니 유치원 가기도 전에 온라인게임 마스터했다는 친구 아이 얘기가 이제 믿겨진다.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세상 참 달라졌다"고 한다. 달라지는데 가장 큰 몫을 한 게 바로 디지털 기술이다. 뭐든 몸을 움직이고 손을 써 해결해야 했던 아날로그 시대를 거친 어머니 아버지의 눈엔 앉아서 버튼만 누르면 일이 풀리는 세상이 낯설 법도 하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세상을 풀이해주는 과학이 변했을 뿐이다.
가장 작은 존재인 줄 알았던 원자보다 더 미세한 입자들을 찾았고, 만유인력의 법칙이 전부인 것 같았는데 상대성이론이 혜성 같이 등장했고, 새로운 이론이 낯선 입자들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됐다. 결국 실험실에서만 필요할 듯했던 거대한 컴퓨터가 이젠 사람들의 가방에까지 들어 앉았다.
과학의 변화가 디지털을 만들어냈고, 이제 한술 더 떠 '디지털 다위니즘'이란 말까지 생겼다. 끊임없이 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해 진화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과학자나 기업을 두고 생긴 말이지만, 점점 보통 사람도 예외는 아니겠구나 싶다.
디지털 다위니즘 시대에 아이를 키우면서 갈등할 때가 있다. 현관이나 자동차 문을 리모컨으로 여는 걸 먼저 알려줄까, 열쇠를 사용하고 보관하는 법부터 가르쳐 줄까.
인터넷 쇼핑에서 클릭하는 모습부터 보여줄까, 재래시장에서 흥정하는 노하우부터 전수할까. 첨단 디지털 환경을 마음껏 누리길 바라면서도 어머니 아버지 시대의 능동적이고 부지런한 모습도 물려받길 바란다.
1960∼70년대 생활상을 재현한 최근 한 전시회를 당시 학창시절을 보냈던 엄마아빠들이 아이 손을 잡고 많이 찾았다고 한다. 우리 시대 젊은 부모 세대의 마음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내심 반갑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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