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세미나실에서 훈훈한 졸업식 뒤풀이가 열렸다.
안면기형으로 힘겨워하면서도 생활 형편이 어려워 어쩌지 못하다가 삼성병원 측의 배려로 성형수술을 받고 함박웃음을 되찾은 11명의 중ㆍ고교 졸업생 및 진학예정자가 함께한 것이다. 개학과 함께 새 학교에 진학하는 이들이 들어선 행사장에는 '우리 이제 학교가요'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왼쪽 뺨의 커다란 점 때문에 늘 움츠린 채 살아왔다는 유모(16)양도 이 날 병원측이 마련한 새 고등학교 교복을 선물 받고 환하게 웃었다. 거대모반(학명)이 자라 귓속까지 뒤덮는 바람에 유양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고, '싸늘해 보인다'며 친구들도 유양을 피했다고 한다.
유양은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인 아버지의 수입으로는 1,000만 원이 넘는 수술 비용을 감당할 수 없던 차에 2007년 병원이 마련한 '밝은 얼굴 찾아주기' 의료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무료로 수술을 받았다.
유양은 "책임질 형편도 안되면서 저를 낳았다며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병원에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고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유양의 외할머니 강한숙(67)씨는 "자라면서 흉이 입술 주변까지 자라 걱정이었는데 수술을 해줘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이모(13)양은 오른쪽 턱과 입 주위에 퍼진 혈관종 수술을 받았다. 아직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또 5번 가량의 레이저 시술을 더 받아야 하지만 이 양은 새 교복을 입어보며 해맑게 웃었고, 구순구개열 수술을 받고 웃음을 되찾은 최모(17)양도 가족과 함께 기쁨을 만끽하며 병원 측에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의료봉사에 든 10억 원의 비용은 지난해와 올해 삼성생명과 삼성중공업이 부담했다. 오갑성 삼성서울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공짜수술이니까 불친절할 것으로 예상하고 온 환자들이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얘기할 때가 가장 보람 있었다"며 "외모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들이 새 출발의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소중한 시간을 밝고 활기차게 지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안면기형을 안고 사는 저소득층 가정 청소년들 가운데 무료 수술 서비스를 신청한 이는 모두 1,000여 명. 이 가운데 혜택을 얻은 것은 377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시선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고, 그 숫자는 병원 측이 파악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저소득층 청소년의 안면기형은 빈곤을 되물림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지만, 정부는 대책은커녕 실태에 대한 조사에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성형외과 수술은 화상이나 응급치료, 재건수술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을 수 없다.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