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스개 소리에 집에서 밥을 한 끼 먹으면 1식님, 두 끼 먹으면 2식이놈이라고 하던데, 설 연휴 집에서 꼬박꼬박 세끼를 얻어먹느라 남편들은 눈치깨나 보였을 듯하다. 아내들은 아내들대로 명절음식 준비하고 식구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몸은 파김치가 되고 속은 부글부글 끓었을 것이다. 명절이 지나면 여기저기 부부간에 한랭전선이 발달해 한반도가 냉랭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편하고 즐거워야 할 명절이 어찌하다 이렇듯 영 불편한 나날이 되어버렸는가?
예전에 우리 남자들이 명절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여자들의 희생 덕분이었다. 내게도 결혼 전의 명절은 말 그대로 즐거운 명절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둘이나 되는 집안의 장남이었으니 안방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어머니가 바로바로 해주는 맛난 음식을 신나게 먹기만 하면 되었다. 음식 간이 어떻네 품평까지 하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문제는 결혼 후에 일어났다. 아내가 부엌에서 하루 종일 쩔쩔매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일 하실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아내가 일하는 것은 안쓰러워 주변을 자꾸 맴돌며 뭔가 거들 일이 있나 찾다가 어머니의 눈총을 받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흘러 여자들이 부엌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가버렸는데도 아내들은 여전히 명절준비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남편들은 좌불안석이다. 이제 누구도 편하게 안방에 앉아 해주는 음식을 먹기 어렵게 되었는데도 아내들은 여전히 부엌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아내나 남편 모두 명절이 두렵고 불편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남자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요즘 주부 습진을 호소하는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을 정도로 설거지를 열심히 하는 남편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실제 주부 습진에 걸린 경우는 거의 없다.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설거지를 열심히 한다는 자랑은 내가 이만큼 아내를 도와준다는 공치사일 뿐이다. 다른 집안일은 하지 않고 설거지 정도는 도와준다는 말이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집안일은 어떻든 여자의 일이고 그걸 내가 도와준다는 인식이 놓여있다. 그러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집안일이 아내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기도 하다는 인식의 전환을 이루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 모두 밖에서 일하고 들어오는데 집안일을 한 사람에게 떠넘겨서는 문제만 증폭될 뿐이다. 가정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남편과 아내가 집안일을 함께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집안일이란 누가 누구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나누어야 하는 공동의 의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사를 분담하더라도 한 사람이 요리를 하고 다른 사람이 설거지를 하는 것보다는 둘이 함께 요리하고 설거지도 같이 하는 것이 훨씬 즐겁다. 청소처럼 귀찮은 일도 함께 나누면 훨씬 수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들도 청소하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아이 기르는 일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자들이 음식을 할 줄 알게 되면 밥 안 해준다는 아내들의 협박이 무용지물이 되는 부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교의 종주국이지만 장보기며 요리를 자신의 일로 생각하는 중국 남편들을 본받을 만하다. 한국 남편들이여 살림을 배우라. 그것이 집에서 밥 세 끼 먹는다고 삼식이XX라 구박받지 않는 비결이다.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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