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얼었던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 영하의 추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봄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우수를 전후로 겨우내 한반도를 냉각시켰던 북서풍이 잦아들고 남에서 북으로 불어가는 남서풍 계열의 바람이 많아진다. 이즈음의 남서풍은 북한 김정일 체제에는 가장 두렵고 위협이 되는 바람이기도 하다. 남한 내 반북단체들이 김정일 체제에 치명적 독소가 든 전단을 이 남서풍에 실어 대북 공습을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68회 생일이었던 16일, 탈북자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경기도 파주 자유의 다리에서 대형 풍선에 전단을 실어 날려보냈다. 세계인권선언문과 '김정일을 고발합니다'라는 내용의 삐라 10만장, 라디오 150대, 1달러짜리 지폐 200장이 남서풍을 타고 북녘 산하에 뿌려졌다. 반북단체들의 춘계 '대량살포 선전무기' 공습이 본격 시작된 것이다.
반북단체들이 날려보내는 삐라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올 것은 뻔하다. 지난 8일 벌써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 연합성명이라는 이례적인 형식으로 경고를 해놓았다. "사회주의 체제 전복과 내부 와해를 노린 어중이떠중이의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이며 반 평화적인 책동을 짓뭉개버리기 위한 전면적인 강력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전면적인 강력조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대북 전단 살포 등을 겨냥한 것은 분명하다.
논란 속에 국회에서 입법 절차를 밟고 있는 북한인권법은 전단 살포와 같은 반북 민간단체 활동을 지원하는 것도 주요 목적이다. '북한 인권 증진 관련 민간단체의 활동이 활성화하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제15조 1항)'는 내용이 이런 목적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안은 11일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퇴장 속에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의원들만으로 통과돼 법사위와 본회의 처리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민주당은 자당 소속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사위에서 길목을 지켜 저지한다고 벼르고는 있으나 중과부적인 형세여서 법안 처리를 막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문제는 북한인권법이 통과됐을 경우의 남북관계다. 미국과 일본이 이미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시행 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과 특수관계인 우리의 상황은 또 다르다. 북한은 "엄중한 적대행위이며 참을 수 없는 모독"이라고 반발하기 시작했다. 인권문제 제기를 체제 문제로 받아들이는 북한이다.
북한인권법에 규정된 대로 통일부에 북한인권 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 북한인권대사가 임명돼 활동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남북관계가 유지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인권 문제가 매우 심각하며, 북한주민들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는 인식에는 좌우를 막론하고 이론이 없다. 그러나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북한 인권 문제의 대부분은 집단주의와 1인지배의 체제 속성에서 비롯된다. 이런 성격의 인권 문제는 체제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 한 획기적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전단 살포 등을 통해 북한주민들에게 김정일 체제의 허구를 알려 인권 개선을 위한 내부 압력을 키운다지만 과거 북한의 대남비방 삐라가 그랬듯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북한 김정일 체제의 보장은 북핵 문제해결을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그 체제 보장은 바로 인권문제와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다.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를 유예하거나 희생해야 한다는 단선적 논리를 물론 받아들일 수 없다.
인권 개선엔 전략적 선택 필요
양자 세계의 불확정성 원리처럼 핵 문제 해결과 북한 인권문제 간에는 동시 해결이 힘든 역학이 존재한다. 북핵 문제 해결 수순의 어느 단계에서 전략적 선택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북한을 정상국가의 길로 나아가게 유도해서 김정일 정권 스스로 국제규범과 기준을 따르고 북한주민들이 외부의 접촉을 늘려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선택이다. 분노의 삐라와 북한인권법만으로는 그런 길을 열어가기 어렵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