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스케이팅에서 불과 4개 종목이 끝난 17일 현재 한국대표팀의 메달은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다. 여자 3,000m를 제외하고는 전부 시상대에 올랐다. 밴쿠버동계올림픽 초반 최대 화제로 떠오른 '빙속 코리아'. 그 원동력을 되짚어봤다.
북미ㆍ유럽세, 체력으로 뚫었다
김관규(43ㆍ용인시청) 대표팀 감독은 "비결이랄 것도 없고 무조건 체력 키우기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장거리 출신인 김 감독은 선수 시절 불암산(태릉선수촌 인근) 산악구보의 '귀신'으로 꼽힐 만큼 체력이 으뜸이었다. 지휘봉을 잡은 이후 강조한 점도 역시 체력. "선수들이 곡소리를 낼 때가 가장 흐뭇하다"는 김 감독의 '조련' 아래 선수들의 체력은 한계를 모르고 강해져만 갔다.
이승훈은 이번 올림픽에서 마지막 바퀴 랩타임이 출전선수 중 최고였고, 모태범과 이상화 역시 스퍼트에서 빙속 강국 북미와 유럽을 압도했다. 제갈성렬 SBS 해설위원은 "경기장 빙질이 최악 수준이었음에도 악조건을 이겨내고 최고의 성적을 낸 비결은 작은 변화에 영향 받지 않을 만큼 정점에 오른 체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올림픽 정조준한 11개월 프로젝트
지난해 4월 소집된 대표팀은 올림픽까지 11개월간 쳇바퀴를 굴렸다. 최상의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 김 감독은 훈련 스케줄이 적힌 쪽지를 몇 번이고 찢었다가 다시 썼다. 밤을 꼬박 새우는 날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 웜업(4월)-쇼트트랙 병행과 체력훈련(5, 6월)-캘거리 전지훈련(7월)-4~6월 훈련 반복(8월)-캘거리 전훈(9월)-선수촌 속도훈련과 대회 출전(10~1월)-캘거리 고지대 전훈(2월)이 메달 퍼레이드를 가능케 한 11개월간의 프로젝트다.
선수들은 코너링 기술 습득을 위해 쇼트트랙 선수로 변신하는 한편 올림픽 직전 일주일간은 고지대(1,034m)에서 녹초가 돼야 했다. 덕분에 밴쿠버 이동 후 빙질 적응훈련에서는 컨디션이 최고조로 올라왔고, 실전에서 120% 실력 발휘가 가능했다. 비용에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전훈을 권장하는 한편 스케이트 날 전문가 2명을 올림픽에 함께 데려오는 등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아낌없는 지원도 신화창조를 도왔다.
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 한 가족 팀워크
메달리스트 3인방은 경기 후 "이규혁 선배가 있어 메달이 가능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규혁(32ㆍ서울시청)은 스피드스케이팅 남녀대표팀 가운데 '왕고참'. 남자 500m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으나 15위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다. 까마득한 후배들은 메달 획득의 순간에도 끌어주고 밀어주던 대선배가 먼저 생각났던 것. 대표팀의 가족 같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감독은 "옛날처럼 '집합을 거는' 시대는 지났다. 일대일로 불러 혼낼 땐 혼내고 다독일 땐 다독이면서 선수들을 지도했다"면서 "대표팀 전원에게 세계 수준에 가까이 있음을 강조한 게 누구든 일을 낼 수 있는 분위기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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