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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5층 이하 건물이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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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5층 이하 건물이 더 위험하다

입력
2010.02.1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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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과 20층짜리 아파트 가운데 지진이 일어나면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최근 수도권 지진 발생을 계기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언뜻 생각하면 낮은 건물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높은 건물이 더 쉽게 무너질 것 같다. 하지만 물리학자와 공학자들의 예측은 다르다. 건물의 높이가 아니라 진동수가 문제다.

지진 피해의 물리학

진동수는 1초당 진동을 반복하는 횟수. 단위 시간에 얼마나 많이 또는 빨리 흔들리는가를 뜻하는 수치다. 모든 물체는 고유한 진동수를 갖는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면 물체는 고유한 진동수에 맞춰 흔들린다. 건물도 마찬가지다.

물체에 고유진동수와 같은 진동수를 가진 힘이 작용하면 그 물체의 진동은 더 증폭된다. 물리학에선 이 현상을 '공명'이라고 부른다.

그네를 밀 때 미는 힘을 더 가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 그네가 손쉽고 힘있게 쭉 나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순간 바로 공명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지진이 일어나면 고유한 진동수를 갖는 지진파가 여럿 발생한다. 이 가운데 가장 우세한 지진파와 고유진동수가 같은 건물은 공명 때문에 더 심하게 흔들리게 된다. 실제로 1985년 멕시코시티 지진 때는 20층, 95년 일본 고베 지진 땐 5, 6층 건물이 많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고층건물은 저층보다 천천히 흔들리기 때문에 진동수가 작다. 20층짜리 아파트의 고유진동수는 약 0.5헤르츠(Hz). 1초 동안 0.5번 흔들린다는 얘기다. 보통 한 층씩 낮아질 때마다 0.1Hz씩 고유진동수가 커진다. 이렇게 따지면 5층 아파트는 약 2Hz다.

5층 건물 크게 흔들릴 수 있어

한반도에 지진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김재관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5층 이하 건물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반도는 유럽과 러시아 아시아가 속한 유라시아판 내부에 있다. 때문에 일본처럼 판과 판이 만나는 경계에 있는 나라보다 발생 가능한 지진 규모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큰 피해는 주로 진앙지에 국한될 거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최근 과학자들은 진앙지로부터 수십 km 이내에서 독특한 지진파를 발견했다. 진앙 아래 진원에서 단층이 미끄러지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이 움직임은 점점 옆으로 전파된다.

커다란 호수를 덮은 두꺼운 얼음이 한번에 깨지지 않고 차례로 금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균열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지진파도 연속적으로 만들어지면서 거의 비슷한 속도로 함께 전파된다. 이들 지진파가 중첩되면 순간적으로 에너지가 확 커진다.

김 교수는 "한반도 지진 기록을 분석해보면 규모 6.0∼6.5의 지진이 일어날 경우 진앙지로부터 약 15km 이내에서 이런 중첩 지진파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 진동수는 2Hz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5층 정도 건물이 이 중첩 지진파와 공명할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 독특한 지진파는 '킬러 펄스'라고도 불린다. 외국에서도 킬러 펄스의 진동수와 고유진동수가 일치하는 건물이 피해를 많이 입었기 때문이다.

킬러 펄스의 진동수는 지진 규모가 작을수록 커진다고 알려져 있다. 3층 이하의 낮은 건물이 킬러 펄스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지진에 강한 한옥

우리 조상들은 지혜롭게도 낮은 건물을 안전하게 짓는 기술을 구사했다. 한옥 얘기다. 1층 건물이지만 지붕이 무거운 구조라 같은 층수의 현대식 건물보다 진동수와 지진력(건물이 받는 지진의 힘)이 작다.

가로 세로 일렬로 나열한 목재 사이사이에 볏짚을 끼워 넣은 벽체, 고정하지 않고 구부러지도록 만든 보와 기둥의 연결 부위도 지진력 감소에 큰 몫을 한다. 외부에서 힘을 받으면 스스로 변형되면서 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3년 실제의 절반 크기로 지은 한옥을 대상으로 이뤄진 실내 인공지진 실험 결과 리히터 규모 6.5∼7.0의 강진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현대식 건물도 기반부터 꼭대기까지 철근을 이은 다음 콘크리트나 벽돌을 쌓는 기본적인 조건만 지키면 지진에 훨씬 안전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부러지지 않고 구부러질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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