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땅에 과연 언제부터 농사를 시작했는가의 답은 대체로 신석기시대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구석기 인류는 주로 수렵과 채취로 먹거리를 해결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면 정착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농경이 시작되는데 이 변화를 우리는 신석기 혁명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생산해서 남는 곡식이나 음식은 저장이 필요하게 되어 드디어 토기가 발명된다.
이렇게 시작된 농경은 초기 농경으로 벼와 같은 고급 곡식은 생산되지 않았다. 청동기시대 들어와서야 탄화된 쌀 등이 발견되고 있어 확실히 이때부터는 벼농사가 이뤄졌음을 알게 한다. 농경 생활이 시작됐다는 것은 유물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농경의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유물이 바로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 즉 경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청동기이다.
국립중앙박물관 1층 전시실 고고전시관의 청동기·초기철기실에 들어서면 독립된 진열장에 대접 받으면서 전시돼 있는 유물이 바로 이 농경문청동기이다. 설명을 보면 '청동기시대 기원전 4세기, 앞면에는 따비로 밭을 갈고 괭이로 땅을 일구며 수확한 곡식을 항아리에 담는 모습이, 뒷면에는 오늘날 솟대를 연상시키는 나뭇가지 끝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표현되었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를 보면 6.25 동란 후 부산으로 임시정부가 내려갈 때 중요유물과 같이 피난했다가 서울수복 후인 1954년 경복궁 내 있었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1993년 철거됨)에서 지금의 덕수궁 석조전으로 옮겼던 것이다. 그리고 1972년 박물관을 신축해서 옮겼는데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이 바로 그 건물이다.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가기 전까지의 18년간을 우리는 덕수궁 박물관 시절로 부르고 있다.
이 시절인 1969년 8월 어느 날 대전에서 수집했다는 이 농경문청동유물을 국립박물관에서 구입하게 되었는데 모양이 방패 같기도 하고 무슨 지붕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해서 우선 방패형동기로 이름지었다. 박물관에 가져온 이 청동제의 유물을 처음 본 한병삼(2002년 3월 작고,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 유물표면에 어렴풋이 뭔가 그림이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어도 어쨌든 예사 유물이 아닌 것을 직감하고 서둘러 구입하도록 한 터였다. 그때부터 매일 조금씩 알코올을 사용하여 표면에 있는 녹을 천천히 제거해 나갔다. 한 달 여 닦아내는 작업 끝에 청동기의 앞과 뒷면에 새겨놓은 그림 모두를 밝히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농경문청동기가 탄생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97년 광주 신창동 복합농경유적에서 발굴된 목제품 가운데 괭이의 날로 여겨지는 유물이 있었는데 최근에 와서야 이 유물이 따비임이 확인되었다. 바로 농경문청동기에서 보이는 따비와 동일한 형태로, 실물로 발견된 최초의 따비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따비를 이용한 농사가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그림과 유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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