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2월 19일. 서울 신사동에 사재를 털어 첫 사무실을 냈다. 주위에서는 3년도 못 갈 거라고 야유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울발레시어터(SBT)는 건재하다. 비록 셋방살이 처지긴 하지만.
창단 15주년을 맞은 SBT의 김인희(47) 단장과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51ㆍ본명 전상헌) 부부를 11일 서울 정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SBT는 통일교 지원을 받는 유니버설발레단을 제외하고는 국내 유일한 민간 직업 무용단이다. 발레단은 십시일반으로 모인 지원금과 공연 수익금으로 단원들의 4대 보험과 임금, 공연 제작까지 모든 살림을 꾸리고 있다.
"미친 짓이었죠. 구상한 지 석 달 만에 창단했는데, 조금만 더 고민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임스 전은 남 일 말하듯 툭툭 과거를 내뱉었다. 당시 이들은 유학을 거쳐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주역으로 활약한 스타 무용수들이었다. 부부는 그러나 "창작발레에 대한 열의가 자식을 낳는 것까지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춤만 추던 이들에게 단체 운영은 산 너머 산이었다. "1억이 필요하면 9,000만원 짜리 집을 팔면 되는 줄 알았지, 경영 마인드 같은 건 하나도 없었어요. 하지만 부모가 힘들다고 아이를 버리지는 않잖아요." 김 단장은 가슴 철렁한 고비를 세 번 넘겼다고 했다. 외환위기를 겨우 통과했더니 2000년에는 예술의전당 입주단체로 선정된 것이 무산돼 10억 빚더미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발레단 존폐의 기로에까지 섰지만, 단원들이 임금의 30~40%를 자진 삭감한 덕에 오히려 흑자를 내는 기이한 일도 벌어졌다.
이들은 클래식 발레가 주를 이루는 국내 무대에 꾸준히 모던 발레를 올렸고, 티켓 가격을 1만~5만원으로 낮게 정해 발레의 대중화를 꾀했다. 무엇보다 창작 발레를 선보이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간 발레단은 전막 발레 9편과 소품 60여 편 등을 창작해 선보였다. 대부분이 제임스 전의 작품으로, 이 중 'Line of Life' 'Inner Moves' 'Variations for 12' 등 3편은 미국 네바다발레시어터와 애리조나발레단에 수출하기도 했다.
올해 4월에는 제임스 전의 2007년 작 '코펠리아'가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 무대에 오른다. 국립발레단이 국내 안무가의 작품을 사서 공연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유명 희극 발레를 제임스 전이 '카툰발레'라는 콘셉트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통통 튀는 캐릭터와 재치있는 연출로 마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또 7월에는 15주년 기념 공연인 '모던발레 갈라'를, 8월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안성수 교수와 합작하는 '모던프로젝트 2010'을 내놓는다.
SBT는 미국 안무가 조지 발란신이 만든 뉴욕시티발레단을 목표로 삼는다. 뉴욕시 연극음악센터의 전속발레단으로 창설돼 신고전주의 발레로 명성을 떨친 단체다. 김 단장은 "단체에 주인이 있으면 그가 죽은 뒤 힘을 잃더라"면서 "5년 뒤 발레단이 성인이 되면 우리 부부는 은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까지 자생력과 예술성을 갖춘 발레단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숱한 위기를 이겨낸 부부의 얼굴에는 강단과 여유가 동시에 묻어났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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