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독배를 마실 것인가. 올해 세계 자동차 산업이 한치 앞을 예상 못하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부에서는 경쟁 격화로 몇 년전 반도체 시장과 유사한 치킨게임(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대결하는 게임)이 시작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요타의 리콜 사태가 가장 큰 원인. 여기에 올해 사상 최대로 예상되는 공급과잉, 각국의 재정 위기, 친환경차 개발 부담 증가 등으로 어느 업체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16일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KARI)에 따르면 올해 예상되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공급과잉 규모는 2,900만대로 사상 최대치다. 2007년 1,440만대 수준과 비교하면 3년만에 배 이상 증가한 것.
도요타를 필두로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생산설비를 늘렸지만 수요는 급감한 것이 원인이다. 특히 미국 자동차 수요는 부동산 열풍이 최고조였던 2005년 1,697만대 이후 지난해 1,040만대로 대폭 줄었다. 자동차 수요에도 거품이 있었던 셈이다. 미국의 자동차 수요는 경제 회복이 되더라도 향후 1,200~1,300만대 수준을 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 때문에 각 업체들은 올해 그나마 수요가 증가가 예상되는 중국(9.9%), 인도(11.8%), 브라질(5.3%), 러시아(11.9%) 등 신흥시장에 사활을 걸었다. 지난해 말 폴크스바겐이 인도 내수 1위업체인 스즈키의 지분을 인수하고, 중국에 제5공장 신설하겠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파산보호 신세인 GM도 인도에 소형차 합작사를 설립했고 현대ㆍ기아차도 올 상반기 브라질에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거의 모든 업체가 신흥시장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 와중에 터진 도요타의 리콜 사태는 세계 자동차 업계를 혼돈으로 몰고 있다. 생존에 혈안이 된 업체들의 관심을 다시 미국 시장으로 끌어 당기고 있는 것.
지난달 도요타의 월간 판매량이 1999년 이래 처음 10만대 이하로 내려간 가운데 포드, GM, 현대ㆍ기아차 등은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1,000달러 보상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에 도요타도 질세라 구매자에게 1,000달러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등 시장 사수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다.
미국 시장에서 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중대형 위주의 시장 탓. 신흥 시장의 경우 소형차 수요가 대부분이어서 저수익을 각오해야 하지만 미국 시장은 반대다. 이 때문에 올해 미국 시장은 오히려 자동차 업계의 오아시스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과다한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고도 경쟁에서 탈락하는 업체는 치명타를 입을 위험이 있다.
여기에 최근 불어 닥친 유럽 중심의 각국 재정위기도 혼돈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미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이 지난해 펼쳤던 폐차 인센티브를 폐지ㆍ축소한 가운데 재정위기가 가시화할 경우, 가파른 수요 감소가 예상된다.
박홍재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장은 "도요타 사태, 유럽 재정위기 등 돌발 상황으로 지난 연말에 예상했던 각종 분석이 한달여 만에 휴지가 된 상황"이라며 "시장, 수요에 대한 각종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경쟁은 전방위적으로 격화, 결국 도태되는 업체가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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