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대는 비발디의 의도를 최고의 가치에 두고 면밀한 고증에 따라 만든 세계 유일무이의 공연입니다."한국오페라단 박기현 단장에게 이탈리아의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보낸 편지다. 비발디가 남긴 오페라 '유디트의 승리'가 피치의 연출 버전으로 국내 초연된다.
단신으로 적진에 침입, 곯아떨어진 적장의 목을 벤 구약 성서상의 여걸 유디트가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살아 온다. 낭만주의 오페라의 웅장함은 없다. 그러나 바로크 오페라 특유의 작지만 아름다운 무대는 표현의 새 경지에 닿아 있다. 소품에서 커튼콜까지 면밀하게 계산된 피치의 무대가 오페라 팬들의 기대를 모은다.
기원전 2세기 이스라엘을 침입한 앗시리아의 장군을 죽이기 위해 적진으로 들어가 주흥을 돋운 후, 처단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발디의 오페라가 탄생한 것이 1716년. 섬세한 무대 장치로 대변되는'피치 스타일'을 국내에서 재현할 이번 무대는 이탈리아에서 공수해 온 의상과 세트로 꾸며진다. 이 작품이 근대적 극장 무대에서 서는 것은 세계 처음이다. 이후 7월 이탈리아로 가는 이 무대가 순수 예술 한류의 시금석이 될 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바로크 오페라의 관례를 따라 주역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큰 특징이다. 테너와 메조 소프라노의 중간 음역으로 여걸 유디트를 재현할 가수는 콘트랄토(contralto) 티치아나 카라로. 이 밖에 앗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 등도 콘트랄토의 몫이다. 콘트랄토가 국내 무대에 서는 것 또한 처음이다. 라틴어 가사에다 독특한 중저음을 구사하는 콘트랄토는 원래 거세한 남성인 카스트라토가 맡았다.
국내 무용단의 율동도 따르는 이번 무대를 위해 한국오페라단 합창단은 라틴어를 공부했다. 국내에는 없는 원전 악보를 확보하려 제작진은 이탈리아 측으로부터 일일이 이메일로 받아 순서를 맞췄다. 국내 악단 카메라타 안티콰의 관현악 반주에, 류트는 일본인, 쳄발로는 국내와 이탈리아 주자가 번갈아 연주한다. 지휘봉은 조반니 리곤이 잡는다.
소규모의 바로크 오페라에 맞는 극장 문제도 중요하다. 공연장으로 택해진 충무아트홀은1,200~1,300석이 최적인 바로크 오페라의 조건을 만족시킨다. 대형 공연장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오케스트라 피트 구조 덕에 결과적으로는 객석과 무대 사이가 좁혀져, 친근감 있는 무대가 됐다는 점도 자랑이다.
21년째 한국오페라단을 이끌고 있는 박 단장은 "이 무대는 '메시아'나 '천지창조' 같은 오라토리오에 동작과 세트가 가미된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다"며 " 2007년 피치 연출로 서울서 공연된'리날도'에 이어 다시 한번 바로크 오페라의 순수한 매력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4월 5~7일 오후 7시 30분 충무아트홀 대극장.(02)587-1950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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