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 아들은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그 코너는 정말 무서워요"라 했고, 아버지는 "그럼 느리게 출발하라"고 했다 한다. 하지만 아들의 대답은 "난 이기기 위해 올림픽에 왔어요"였다. 대회 사흘 전 공식연습 도중 썰매가 코스를 이탈해 숨진 그루지아 루지 선수 노다르씨의 아버지 다비드 쿠마리타슈빌리씨는 외신 인터뷰에서 저렇게 전했다. 그 역시 루지 선수였고, 현재 그루지아 루지협회장이다. 고인에게 아버지는 스승이기도 했을 것이다.
루지는 강철 썰매 봅슬레이와 달리 핸들도 브레이크도 없는 나무 썰매(luge)에 엎드려 좁은 커브 경사로를 활주해 걸린 시간을 1000분의 1초 단위로 견주는 경기다. 마찰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원심력에 저항해야 하고, 구간마다의 낙차 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기량이 관건이라고 한다.
그것은 쉬운 말로, 매 찰나마다 죽음에 가장 가까운 삶의 자리까지 정교하게 미끄러질 수 있는 기량일 테다. 고인은 승리에의 열망으로 마지막 16번째 곡선 구간 중력의 5배에 이르는 원심력을 누르는 데 실패했고, 시속 145㎞의 속도로 경계를 넘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당부는 애당초 공허한 것이었다.
동계올림픽 승자들이 하나 둘 탄생하면서 외신들은 영광과 열광의 순간들을 앞다퉈 전하기 시작했고,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고향 그루지아의 허름한 창고 앞에서 아들의 속도에 저항하듯 저렇게 앉아 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사진 바쿠리아니=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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