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자본시장법 시행1년을 맞아, 국내 9개 주요 증권사 CEO 인터뷰를 통해 지난 1년간의 변화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고 풀어야 할 숙제도 많지만, 금융분야에서도 제조업에 못지 않은 '신화창조'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CEO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한국형 IB 세우려면?
누가 뭐래도 투자은행(IB)으로 가야 한다는 견해는 한결같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홍역을 치렀던 미국 월스트리트식 IB모델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것이 아니라, IB의 본분인 자본중개에 충실한 '한국형 IB'를 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데도 이견이 없었다.
증권사들로선 브로커리지(주식위탁매매) 의존도를 낮추고, IB부문으로 사업의 중심축을 옮겨가는 게 지상의 과제. 엄밀히 말하면 브로커리지를 줄이는 게 아니라 IB를 키우자는 것이다.
CEO들은 IB를 육성한다고 해서, 브로커리지 등 리테일(소매금융)이 희생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자산관리 등 리테일 영업이 받쳐주지 않으면 IB의 성공은 어렵다"(유준열 동양종금증권 사장) "리테일 기반이 강해야 IB를 받쳐줄 수 있고 IB가 차별화된 금융상품을 공급하는 제조공장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 투자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박준현 삼성증권 사장)는 것이다.
"IB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선 오히려 오프라인 영업망이 더욱 탄탄해져야 한다"(임기영 대우증권 사장)는 의견도 있었다.
사실 IB가 만들어낸 다양하고 복잡한 상품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소개하자면 온라인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아울러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시장을 끊임없이 창출해야 하는 IB의 특성상 금융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시장 여건도 CEO들에겐 절실했다.
금융수출 성공하려면?
증권사들이 꿈꾸는 또 하나의 목표는 글로벌 톱 플레이어. 아직 글로벌 IB들과 경쟁할 수준은 아니지만, 머지 않아 한번쯤 붙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컸다. 아울러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인 만큼, 금융수출이야 말로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판단도 하고 있다.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금융을 '수출산업'으로 정의하며 "금융이 해외로 나가 잘만 하면, 삼성전자 현대차 같은 글로벌 수출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예컨대 1,700조원에 달하는 국내 개인자산을 해외에서 잘 운용하면, 반도체, 자동차 등 제조업 수출로 벌어들이는 것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증권 박준현 사장도 현재 글로벌 IB의 무주공산인 아시아 시장부터 착실히 다져나가면 10년쯤 뒤면 '금융의 삼성전자'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했다.
최경수 현대증권 사장은 "철저한 현지화가 필요하다"며 "자금이 필요한 현지 기업과 국내 자본시장을 연계하는 등 IB를 개척하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은 사람?
금융은 다른 산업들에 비해 훨씬 창의적인 DNA가 필요하다. CEO들이 한결같이 '인재'를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은 "자본시장이 발전하고 선진 IB로 나아가는 것, 이 모든 것이 인재 양성에 달려있다"며 '인재론'을 폈다. 노정남 대신증권 사장도 "IB역량 강화를 위해 맨파워 보강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서비스 차별화가 생존의 잣대로 부각되면서 직원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고객이 원하고 필요로 하고 만족을 느끼는 자산관리컨설팅 서비스를 완벽하게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높이려면, 교육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인터뷰에 참여한 ceo 명단>인터뷰에>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
노정남 대신증권 사장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유준열 동양종합금융증권 사장
임기영 대우증권 사장
최경수 현대증권 사장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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