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박태영(47)씨의 우리 말투는 어눌했다. 하지만 음악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자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해박한 지식과 열정적인 언변 탓에 말투를 마음 속에 담아둘 겨를이 없었다.
세종문화회관의 숨은 진주로 통하는 박씨는 뒤늦게 한국 국적을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 단장에 5회 연속 연임되며, 10년 동안 지휘봉을 놓지 않은 진기록을 세웠다. 그사이 공연장은 그의 음악을 느끼려는 관객들로 가득 채워졌다.
일본 북한 러시아 거쳐 한국으로
박씨가 대학생들로 구성된 유스오케스트라 단장으로 발탁된 것은 2000년 4월. 그의 나이 37세 때로, 최연소 단장이었다. 1998년 작곡가 윤희상을 기리는 연주회에 초청 받은 후 한국에서 몇 차례 공연을 한 게 전부였다. 연줄도 없고 정치력도 없었지만 연주회가 괜찮다는 소문이 나면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못해 독특하다. 일본에서 태어난 박 단장은 아버지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고위 간부를 지냈다. 그래서 남한보다는 북한과 가까운 가풍 속에서 자랐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83년 도쿄음대에 입학한 뒤 87년 북한의 명문 평양음악무용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어릴 때부터 훈련 받은 엘리트 학생들이 총집합 한데다 해외파도 많아 북한 학생들의 음악적 자질은 한국 학생들 못지 않다는 게 그의 평가다. 박 단장은 이후 러시아 명문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석ㆍ박사 과정까지 마쳐 일본 북한 러시아의 최고 과정에서 음악적 재능을 검증 받았다.
하지만 그의 최종 정착지는 한국이었다. "일본에서 '조센징'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서웠어요. 러시아 사람들도 동양인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고요. 북한도 정답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결국 러시아 유학 중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처음에는 평양에서 대학 다녔다고 하니까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음악적인 면으로 평가해 주더군요."
연주 실력으로 관객 감동시켜
그는 처음 유스오케스트라 단장에 취임 후 썰렁했던 공연장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 유료 관객은 겨우 200명 정도 됐을까, 무료 관객까지 다 합해야 500명을 못 넘었어요." 660석 규모의 소극장조차 다 채우지 못했으니 3,000석이 넘는 대극장 공연은 꿈도 못 꿨다. 단원들의 훈련 부족과 기획력 부재를 이유로 꼽은 박 단장은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명문대 학생들로 구성된 단원들은 독주훈련은 잘 돼 있었지만 주변 소리를 듣는 훈련이 부족했어요." 박 단장은 실내악 연주를 강화해 오케스트라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켰고, 일본에도 유학을 보내 재능을 배가했다.
단원들의 기량이 향상되자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공연을 잇따라 선보였다. '피겨 여왕' 김연아의 배경음악인 '죽음의 무도'를 공연해 대극장을 관객들로 가득 채웠고, 베토벤의 9개 교향곡을 3년 동안 릴레이 연주해 호응을 얻었다. 일반학생까지 쉽게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해설이 있는 음악회'도 시도했다.
박 단장의 소리소문 없는 노력에 관객은 점점 불어나 취임 초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선보인 '썸머 클래식'은 한 티켓 판매사가 선정한 '가장 많이 판매되고 인기가 높았던 클래식 공연'으로 꼽혔다.
박 단장은 요즘 5월 열리는 유스오케스트라 100회 정기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다. 단원들이 전문연주자 못지 않은 실력으로 다양한 클래식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만큼 이번에도 관객들이 많이 찾아올 것으로 믿고 있다.
박 단장은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해외공연이 성사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래서 우수한 단원들이 졸업해도 갈 곳 없어 걱정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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