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축구대회가 끝났다. 중국이 우승, 한국이 준우승이었다. 일본은 3위 지만 이 대회가 실질적으로 이 세 나라의 경쟁이라는 점에서 실제로는 꼴찌를 한 것이다. 동아시아 축구대회에서 예선이 면제된 나라는 한,중,일 세나라 뿐이다.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유지돼 온 축구에 관한 상식은 이런 것이었다. 일본은 가장 섬세하고 세련된 기술 축구를 했다. 브라질 출신의 귀화 국가대표 선수까지 있을 정도로 일본은 가장 세련된 남미식 축구를 빠르게 흡수했고, 국제 무대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일본식 기술축구는 한국식 투지와 조직력의 축구에 번번이 압도당했다.
한중일 위상변화 보는 듯
기술을 발전시킬 여건이 안됐던 한국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건 정신력과 조직력이었다. 한국에서 축구가 과거 군사정권 시절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과도 관련이 있다. 기술은 없어도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청소년 월드컵 4 강은 미리 정해진 전술을 철저하게 반복 연습한 조직력의 성과였고, 월드컵 4 강은 체력과 정신력의 결과였다. 정신력은 특히 일본을 만나면 사생결단의 투지가 되었다. 한국의 정신력, 조직력이 대부분의 경우 일본의 기술을 압도해 왔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동아시아 사람들의 체격 조건이나 문화적 토양에서 기술 축구는 맞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중국은 오랫동안 아시아 축구의 변방이었다. 체격 좋은 선수들로 대표팀이 구성됐지만 결과는 늘 어설픈 공산품을 보는 듯 뭔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기술은 일본만 못했고, 투지는 좋았으나 조직력은 쉽게 흔들거렸다. 하지만 이번 동아시아 대회에서 중국은 가장 화려한 기술 축구를 구사했다. 패스는 섬세했고, 선수들의 드리블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중국 젊은 공격수의 드리블에 한국의 수비수 3 명이 농락당하는 장면은 새로운 중국식 기술 축구의 백미였다. 어쩌면 축구에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한중일 3 국의 관계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회가 이번 대회였다.
동아시아 축구대회는 2년에 한번씩 열리는 대회이다. 아시안 컵도 있고, 아시안 게임 축구종목도 있는데, 굳이 동아시아 대회를 만든 것은 그만큼 체육행사를 통해서 동아시아의 지역적 아이덴티티(identity)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동아시아 대회의 참가 자격을 가진 나라들을 보면 동아시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가 분명해진다.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등 4개의 중국과 몽골, 북한, 한국, 일본에 태평양의 괌과 북마리아나 제도를 포함해 모두 10 개국이다. 중국 대륙과 한반도, 일본과 태평양의 일부가 동아시아라는 지역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괌과 북마리아나 제도가 미국령인 것으로 볼 때 미국이 이제 동아시아의 일원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중국, 몽골로 대표되는 대륙의 세력과 일본, 미국으로 대표되는 대양의 세력은 언제나 한반도 주변에서 대결을 벌였다. 일본은 남미식 기술 축구를 빨리 받아들인 것처럼 대양, 즉 서구의 근대적 기술을 받아들여 동아시아에서는 언제나 상대적 서구 국가의 역할을 해왔다. 중국은 과거의 중국 축구처럼 큰 체격에도 언제나 대국의 위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투지ㆍ조직력으로 부족
그 사이에서 한국은 투지나 조직력이라는 자생적 덕목들로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위상을 유지시켜 왔다. 이번 대회 중국의 우승에서는 경제 대국으로 변화해가는 중국의 위력이 느껴진다. 일본의 몰락은 자동차 리콜 사태가 말해주듯 재빠른 서구 학습이 최선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중국에 지고, 일본에 이긴 한국도 투지와 조직력 말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할 때이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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