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 쓰고 모은 기록들은 한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자 그 자체로 역사입니다."
송철원(68) 현대사기록연구원 이사장은 걸어다니는 '6ㆍ3 사전'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61학번으로 6ㆍ3항쟁의 주역인 그는 그 시절 반독재투쟁의 가장 방대하고 세세한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각종 신문 스크랩은 물론 구속통지서, 재판기록, 서신, 학생운동권 내부 문서 등이 망라돼 있는 이 기록들은 오늘날 그가 현대사기록연구원을 설립해 현대한국구술사를 연구하는 든든한 밑천.
이 밑천을 물려준 이는 6ㆍ3항쟁의 한복판에서 독재에 항거했던 아들을 격려하고 뒷바라지하며 이 기록들을 쓰고 모은 아버지 송상근 옹이다.
송 이사장에게 가장 소중한 유산을 물려준 그의 부친이 7일 향년 97세로 작고했다. 세브란스 의전 출신 소아과 의사였던 고인은 시립병원장과 철도병원장 등을 지낸 국가공무원 신분으로 1964년 3월부터 1971년 11월까지 언론 보도와 각종 자료를 모아 '송상근 스크랩'을 남겼다. 이 자료들은 역사의 공백으로 남을 뻔한 현대사의 한 칸을 실하게 메울 소중한 기록유산으로, 송 이사장은 2007년 이를 국가기록원에 기증했다.
"아버지는 평소 수집, 보존, 기록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우표는 1957년부터 수집해 지금은 내가 이어받아 계속하고 있고, 일기도 최근 몇 년은 워낙 고령이라 중단했지만 꾸준히 써오셨습니다. 워낙 꼼꼼하셔서 신문 스크랩은 물론 6ㆍ3동지회 소집엽서, 수인번호 실물, 김지하와 주고 받은 편지 같은 것까지 다 모아놓으셨더군요.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자료들을 발견하고 저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자료는 스크랩북 40여 권에 달한다. 송 이사장은 "지금 보면 그냥 '자료'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불온문서'로 압수당하면 폐기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벽장에 숨기거나 심지어는 땅속에 파묻어 보존했었다"고 전했다.
일기는 '데모꾼'으로 경찰서와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아들을 향한 부정(父情)으로 절절하다. 1961년 3월 10일 일기에는 700점 만점에 526점으로 서울대 정치학과에 붙은 아들을 대견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1965년 5월 23일에는 중앙정보부에 납치돼 심한 고문을 당한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킨 뒤 "약자에 대한 무법천지"에 억장이 무너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비친다.
송 이사장은 선친이 남긴 기록 중 1965년 3월 24일 발표하려던 '3·24 제2선언문'과 '격문' 원본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선언문은 김지하 시인이, 격문은 송 이사장이 작성했는데, 사정이 있어 발표하지는 못했다. 이 문건으로 1964년 9월 송 이사장은 구속되고, 김 시인은 도피한다. 장시 '오적(五賊)'은 김 시인의 부친이 이 일로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전기고문을 당한 걸 안 뒤 쓰여졌다.
"역사는 한마디로 기록입니다. 그러니 기록이 없으면 역사가 없는 셈이 되고 역사라는 기록이 없는 민족은 존재해봤자 빈껍데기뿐이라는 것은 자명하지요." 송 이사장은 "조선왕조실록 하나만 보아도 우리 민족은 기록의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근ㆍ현대의 격동기를 거치며 정부와 민간 모두 기록의 가치를 무시하고 외면해왔다"고 지적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1일, 송 이사장은 부친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올렸다. "아버지. 초지일관할 줄 아는 아들로 낳아 길러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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