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위한 밥상을 차리는 일은 혼자 사는 제게 일종의 포상행위예요. 오늘 하루도 힘들게 잘 살았다, 토닥여주는…."
자취생활 7년차인 조보나(26)씨가 싱글족들을 위한 레시피를 담은 요리에세이 '스무 살 요리법'(디자인 이음 발행)을 펴냈다. 서양화를 그리는 이 젊은 화가는 인터넷에선 이미 '기린나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요리블러거. 책은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하고 건강한 밥상요리부터 혼자서도 우아하게 즐길 수 있는 브런치 레시피까지 다양한 메뉴들을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와 함께 담았다.
"저도 대학 입학해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땐 라면과 커피, 술과 빵이 주식이었죠. 그러다 보니 반년 만에 요로결석에 영양실조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몸이 망가졌어요. 이대로 살아선 안되겠다 싶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벌레 먹은 쌀 봉지를 열어 밥을 안쳤는데, 밥 끓는 냄새가 좁은 자취방을 가득 채우는 거예요. 바로 삶을 부추기는 냄새였어요."
그때부터 조씨의 혼자서도 잘 챙겨먹기가 시작됐다. 밥짓기로 시작한 요리여정은 밥 말아먹을 국물요리로 발전했고, 한두 개씩 만들어먹기 시작한 반찬은 나중엔 식재료만 봐도 맛이 상상돼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내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제는 가족이 그리울 땐 굴무밥을 해먹고, 봄감기로 몸이 으슬거릴 땐 팟국을 끓여먹는다. 브런치를 즐기고 싶을 땐 양파와 감자, 달걀만 있으면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스페인식 감자오믈렛을 해먹으며 기분을 낸다.
조씨는 밥상이 풍요롭고 다채로워지면서 인심도 넉넉해졌다고 했다. 아무리 잘 챙겨먹어도 혼자 먹는 밥상보다는 둘이 먹는 밥상이 좋은 법. 그래서 후배들을 불러서는 오징어떡볶이나 카르보나라떡볶이를 해주고, 이웃들과는 고추장버섯케사디야를 나눠먹는다.
"누군가에게 밥을 해준다는 건 마음을 먹여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진밥을 좋아하는지 된밥 좋아하는지, 짠 걸 좋아하는지 싱거운 걸 좋아하는지 취향을 살피고, 마음이 전달되도록 불조절을 하고 하는 과정이 곧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해주는 과정이니까요."
만날 손가락에 물감을 묻히고 다니는 이 미대생이 요리에 입문하게 된 데는 전북 군산에 사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전주 출신답게 맛에 대한 기준이 높고 까다로운 조씨의 어머니는 서울로 유학 떠난 딸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걱정스러워 일주일에 한번씩 음식 소포를 보내왔다. 멸치조림, 장조림, 장아찌, 금방 구워 밀봉해 보낸 김 등 밑반찬은 기본, 거기에 그때그때 포장을 뜯어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다듬고 잘라서 이름표까지 붙인 식재료와 요리법을 적은 편지와 메모지까지 들어있었다.
"처음엔 죄다 버리는 게 일이었어요. 다 먹지도 못하는 걸 왜 자꾸 보내냐고 투정도 부리고요. 지금은 제가 엄마한테 요리를 많이 해드리는데, 엄마랑 다른 방식으로 요리하는 걸 보고 아주 재미있어 하세요. 특히 군산에선 먹을 수 없는 파스타를 해드리면 아주 좋아하시죠."
조씨는 자기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몸을 세심하게 돌본다는 것이고, 그것은 내가 내 몸과 가까워지는 일"이라고 했다. 내 몸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지켜보고 그에 요리로 화답하는 과정은 적극적으로 자기 몸에 관여하는 대화이자 소통이기도 하다.
"요리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건 없어요. 멸치다시다 육수만 미리 한 솥 끓여서 우유팩에 나눠 담아 얼려놓으면 어떤 요리든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거든요. 육수를 낼 땐 멸치 내장을 빼고 마른 팬에 약간 볶으세요. 수분이 있으면 비리니까요."
싱글족들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설날이 코앞이다. 식당들도 문을 닫는 이 흥성스러운 날, 혼자 외롭게 끼니를 해결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씨는 굴떡국을 제안했다. 멸치다시마 육수에 떡과 양파를 넣고 끓이다가 굴 추가하고 파 넣으면 끝.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어야 진정한 독립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게 조씨의 지론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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