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으로 가는 비행기 안은 소란스러웠다. 여기저기서 처음 타는 비행기, 기압 차이에 놀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유난히 아이들이 많았다. 한국아이 같으면서도 어딘지 외모가 조금은 달라 옆에 앉은 엄마를 본다. 그러면 엄마는 어색한 미소를 보낸다. 다문화가족이다. 설 연휴를 맞아 친정에, 처가에, 외가에 가는 길이다.
여섯 살 여자아이 정민이도 난생 처음 외가에 가고 있었다. 처음 타는 비행기라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물어볼 나이인데도 승무원의 도움으로 만화영화만 열심히 볼 뿐이다.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거의 없다. 엄마 아빠조차 침묵이다. 아이에게 말을 건네본다."정민이는 어디 가?""베트남요." "집은 어딘데?" "광주요." 그러자 엄마가 쑥스러워하며 어색한 한국말로 거들어 준다. "광주 광역시에요." 앞자리에 앉은 아빠가 힐끔 쳐다보고는 말 없이 고개를 돌린다.
정민이처럼 엄마의 나라, 외할머니와 이모와 외삼촌이 있는 베트남에 가는 아이들이 열 명도 넘어 보인다. 몇 년 전만 해도 드문 모습이라고 승무원은 말한다. 결혼이민이 늘어나고,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농사철이 끝난 설 연휴에는 이렇게 엄마의 나라를 찾는 다문화가족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도 아이도 주변 눈치보듯
벌써 결혼이민자와 다문화가정이 뿌리를 내린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들 스스로부터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무슨 잘못이나 저지른 듯 주변사람 눈치 보고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한다. 그들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시선도 어색하고, 냉담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전히 그들을'베트남 여자'로 보고 '우리 아이'가 아니라 낯선 혼혈아로 생각해 거리감을 두거나 외면한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우리와 같은 한국사람이고, 한국아이들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미래 중요한 국가 인력자원이다. 작년 말로 결혼이민여성은 10만명을 넘어섰고, 정민이 같은 아이들도 20만명 가까이 된다. 이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날 것이고, 아이들은 자라 곧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될 것이다. 그들은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 농촌을 지키고, 공장에서 일하고, 세금도 내고, 20세가 되면 군복무도 할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런 우리 국민을 냉대하고 차별해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면? 생각만 해도 암울하다. 그들은 비행 청소년이 되고, 사회 부적응자가 되고,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을 보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도, 과장도 아니다. 오랫동안 사회 봉사를 해온 한용외 삼성그룹 상담역이 얼마 전 사재 10억원으로 사회복지재단 '인 클로버'를 만든 것도 바로 이들 청소년을 위해서라고 했다. 다문화가족정책과 지원이야말로 지금부터 보다 미래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혼이민 여성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한국말과 한국음식을 가르치고, 한국문화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그 자녀들이 앞으로 올바르고 건전하게 커나가야 한다. 다문화가정의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는 이미 늦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의식이 그들을 비뚤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한 상담역은 "그런 비극을 막자면 그들에게는 한국사회의 첫 경험이 될 초등학교와 교사, 학부모들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들부터 차별의식을 없애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학부모들에 대한 다문화교육이 필요하다.
그들 나라 문화 우리도 배워야
외가에 간 정민이는 언어 소통도 소통이지만, 적잖은 문화적 이질감과 혼란을 겪을 것이다. 엄마 나라의 문화를 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다문화는 말뿐이다. 타 문화를 인정하지 않으며, 공존을 거부한다. 다문화행사라야 기껏 개인 노래자랑, 장기자랑 같은 저급한 것들이다.
<하얀 아오자이> 가 베트남 영화로는 처음으로 이제(25일) 겨우 국내 극장에 걸릴 정도이니 언제쯤 다문화 청소년들이 자신의 전통과 고급 문화를 가꾸고 즐기면서 엄마 나라에 대해서도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까. 하얀>
이번 설 연휴에도 다문화가정의 수십만 아이들은 우리와 똑같이 조상을 기리며 차례를 지낸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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