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델라빠스병원에 꾸린 한국의료진의 진료소는 비좁았다. 현장에 와서 급히 구한 곳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빛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손전등을 켜고 진료했다. 바람이 통하지 않아 뭔가 썩는 악취가 풍겼다. 심지어 부검용 침상에서 중상 환자를 치료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적십자사, 가톨릭중앙의료원으로 꾸려진 한국 의료진은 3일부터 7일간 묵묵히 하루 100명이 넘는 환자를 돌봤다. 열성도, 의욕도 남달랐지만 열악한 진료환경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제 발로 한국의료진을 찾아온 환자들을 선진국 의료팀에 보내곤 했다. 이때마다 한국 진료실에 걸려있는 태극기가 부끄럽게 펄럭이고 있었다.
예정된 결과였다. 우리 의료진은 라면상자에 약품을 담아왔다. 비행기를 갈아탈 때마다 찢어진 곳을 테이프로 붙여야 했다. 수백kg에 달하는 수술장비는 언감생심이었다.
한국 의료진은 정부와 민간이 톱니바퀴처럼 조율된 의료구호활동을 펼친 선진국 진료진에 부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독일 진료실에는 독일 정부 기증이란 마크가 붙은 약품운반용 철제상자가 수십 개 놓여있었다. "정부가 군용기로 날라다 준 것"이라고 했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필요물품을 실을 수 있도록 우리정부가 군용기는 아니더라도 민간항공사와 협의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진발생 한 달째인 14일 아이티 이재민 돕기 모금에서 개인기부가 기업을 앞섰다. 국민의식이 성숙했다는 방증이다. 우리 국민은 동남아 쓰나미, 파키스탄 강진 등 재해 때마다 구호활동에도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지원금 액수만 따질 뿐 정작 구호팀 지원은 뒷전이다. 현장 책임은 의료진과 구호단체들에게 떠맡기고 있다. 국제사회에 기여에 대한 의식은 나날이 높아지는데 정부 역할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아이티(포르토프랭스)=김현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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