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서울교회에서 열린 반포중 졸업식. 학생부회장 김현우(18ㆍ졸업생)군과 후배 최주훈(17)군이 강단에 나란히 섰다. 현우는 교복 윗옷을 조심스레 벗어 후배에게 입혀줬다.
그 역시 지난해 같은 자리에서 선배가 입혀 준 교복의 정을 듬뿍 느낀 탓일까. 현우는 주훈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머지 졸업생 340여명도 일제히 교복 상의를 벗어 곁에 있는 후배에게 손수 입혔다. 학부모 사이에서 훌쩍임이 이어졌다.
막장 졸업식이 말썽이다. 계란과 밀가루 범벅 수준을 넘어 교복을 찢어 던지고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청소년들의 일탈이 도를 넘은 것. 그러나 모든 학교가 그런 건 아니다.
후배에게 교복 입히기 행사부터 학위복 졸업식까지 각종 비법을 동원해 진정성을 듬뿍 담은 졸업식도 적지 않다. 덕분에 졸업식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진지해졌고, 학부모들은 감격해 하고 있단다.
정을 담은 교복은 후배에게
반포중은 지난해 졸업식부터 '전통 역사, 추억, 정을 담아 후배에게'행사를 도입했다. 졸업생이 교복 상의를 직접 벗어 후배에게 입히는 것인데 교복도 물려 주고 졸업식도 경건하게 치르는 1석2조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 학교는 졸업식 사흘 전부터 졸업을 앞둔 3학년 학생들의 겨울용 교복 바지를 모두 걷었다. 하복은 이미 지난해 말 모두 걷어 '교복 물려주기 교실'에 보관하고 있다. 졸업생들은 위는 말끔하게 세탁한 교복을, 아래는 청바지 등 각양각색의 사복을 입고 졸업식에 나타났다. 후배들에게 교복 상의까지 물려주면 어엿한 고교생이 되는 셈이다.
정덕자 반포중 교장은 "교복은 단순히 학교를 마치고 벗어 던질 옷이 아니라 학창 생활의 기억과 의미가 오롯이 담겨 있는 소중한 대상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며 "지난해부터 교복을 함부로 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졸업생 학부모 양희옥(52)씨는 "졸업식에서 아이들이 후배에게 옷을 물려 주고 안아 주는 모습은 정말 밝고 흐뭇했다"고 말했다. 졸업식 날 후배들이 걸친 300여벌의 교복은 세탁 업체에서 말끔히 새 단장해 교복 물려주기 교실에 보관된 뒤 셔츠는 1,000원, 바지는 2,000원, 겨울용 상의는 5,000원에 판매된다.
학위복, UCC도 등장
서울 구로구의 개봉중은 올해 졸업식(5일)에 졸업가운을 도입했다. 졸업생들은 대학 학위복과 학사모를 본따 만든 졸업가운과 사각모를 쓰고 졸업식에 임했다.
학교 관계자는 "대학 졸업식에서나 보던 졸업가운을 입은 덕인지 교복에 밀가루나 계란을 던지던 예년과 달리 매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졸업식을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매년 밀가루와 계란세례로 고심하던 서울 성동구의 무학중도 11일 열린 졸업식에서 졸업가운을 도입했다.
10일 졸업식을 치른 대전 호수돈여중은 UCC를 활용했다. 강당에는 연회장에서나 볼 수 있는 원형탁자와 편안한 소파를 놓고 졸업생들의 학창 생활 사진을 엮어 만든 15분짜리 UCC를 상영했다.
학교 관계자는 "소란스런 졸업식이 아니라 학생들이 교사와 학부모 선ㆍ후배들에게 진지하게 축하와 격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년과 다른 졸업식 자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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