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우리 역사학의 목표는 식민사관의 극복이었다. 타율성ㆍ정체성ㆍ사대주의의 틀로 조선사회의 성격을 규정한 일제의 식민사관을 돌파하기 위해 역사학계는 조선사회 스스로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역량을 갖고 있었다는 논리를 계발하고 그것을 정교화하는 데 진력했다. 내재적 발전론, 자본주의 맹아론 등이 여전히 역사학계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문ㆍ철학 아카데미인 '수유 너머 구로'의 오항녕(49) 연구원은 <조선의 힘> (역사비평사 발행)에서 식민사관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이런 역사학계의 노력을 모두 '범식민주의'로 비판한다. 두 사관 모두 인류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를 향해 진보해왔다는 근대주의의 틀에 갇혀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선의>
"근대로의 전환은 시험의 합격, 불합격을 따지듯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조선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명들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를 자신들의 미래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씨는 이 책에서 문치주의, 대동법, 성리학 등을 키워드로 조선의 재발견을 꾀한다. 가령 그는 경연 제도, 사관 제도 등을 조선의 이념형 조직으로 파악한 뒤 이를 의회, 선거제도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 정치의 그것과 견준다. 근대 정치가 수평적이고 수직적인 상호견제, 인민주권 원리의 구현을 추구한다면 경연, 사관 등은 유가적 문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 "경연은 과거시험을 통해 뽑힌 사대부들이 추구한 민본주의 왕도정치의 이상을 국왕이 동의하게 하는 장치"라고 설명하는 그는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통제한다는 측면에서 조선의 정치제도는 근대 정치제도에 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근대주의의 시각으로 단순히 조선의 정치제도를 '전제주의'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봉건사회 대 근대사회라는 프레임을 해체하는 작업 이외에도 오씨는 조선에 대한 정형화된 시선을 깨뜨리는 데도 힘을 기울인다. 예컨대 광해군의 외교를 '실용외교'로 재조명하려는 최근 학계의 움직임에 대해 그는 "광해군의 부활에는 역사 왜곡의 종합선물세트가 들어있다"고 혹독하게 비판한다. 광해군의 외교정책을 평가하려면 자신의 형제인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제거한 뒤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위기간 내내 궁궐공사를 감행하고 대동법을 무력화시키는 등 내치에 실패했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권 정당성이 허약했던 광해군은 권좌의 보존만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고 외교에 있어서도 미래를 위한 전망이나 원칙을 지키는 대신 '기회주의 외교'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명분은 헛된 것, 실리는 바람직한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하는 오씨는 광해군의 외교를 실리외교로 평가하는 시각에는 '명분론=사대주의=성리학의 폐단'으로 연결시킨 식민사관의 논리가 숨어있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광해군을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힌 군주"로 평가하고 그를 복권시킨 선두 주자는 조선사편수회 간사였던 일본의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ㆍ1876~1940)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관 제도 연구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오씨는 '수유 너머 구로'에서 대중을 위한 역사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혹시 조선적 가치의 복권을 꾀하는 복고주의자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조선 사람들의 비전이나 생활양식에 공감한다고 해서 그것을 현재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현재 상태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거울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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