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11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이례적으로 날을 세웠다. 그것도 에둘러 비판한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직격탄을 날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강도론' 을 둘러싼 박 전 대표의 대응 수위가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에서다.
공식적으론 이번 파문이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오해해서 비롯된 것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는 박 전 대표에 대한 공격적 요소가 상당히 들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파문은 일부 언론의 곡해 보도에 따른 박 전 대표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명난 것 아니냐"며 "그런데 박 전 대표는 한마디 사과나 해명도 없다"고 공박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의 강도론을 반박하면서 보기에 따라 대통령을 강도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한 것에 대해 청와대의 분위기가 매우 격앙돼 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박 전 대표가 '해도 너무했다'는 말이다.
이날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기자 브리핑에서 예우 차원에서 사용하는 '박 전 대표'대신 '박 의원'이란 호칭을 썼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청와대도 박 전 대표에게 별다른 예우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청와대가 박 전 대표를 향해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것은 정부 출범 후 처음이다.
여기엔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친이계와 친박계가 정쟁만 되풀이하는 상황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들어 있다. 정부 여당의 주요 정책에 대해 반대의 뜻을 표명해온 친박계 움직임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란 경고도 가미돼 있다.
청와대 참모들은 박 전 대표 진영이 세종시 문제를 기점으로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친박계가 벌써부터 차기 대선구도를 염두에 두고 정치권 논란의 중심 축에 이 대통령을 올려놓고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이번 일을 박 전 대표의 실언 파문으로 규정지으면서도 박 전 대표를 공박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이 수석이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원래 노예제 폐지에 반대하다 결국엔 노예제를 폐지해 역사적 금자탑을 세웠다"면서 "어떤 경우에도 지도자의 최종 판단기준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자세"라고 지도자 자질 문제를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는 이날 설 연휴를 앞둔 시기라는 점도 고려해 공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연휴 기간 일반 시민들이 이 문제를 화제에 올리게 된다면 청와대측은 별반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정치적 계산을 한 것 같다. 그래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우호적 여론도 늘어날 것이란 생각도 하고 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