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명징한 반주를 배경으로, 섬세하면서 강인하되 때로 폭발적인 목소리가 솟아올랐다. 2008년 독일 고(古)음악 전문 레이블 라움클랑이 발매한 음반 '18세기 함부르크 음악'에서 'Yeree Suh'로 명기된 이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인 재독 소프라노 서예리(34)가 17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에서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바흐의 향연' 무대를 꾸미기 위해 고국을 찾았다.
그는 서정적이면서 고도로 기교적인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분류된다. 흔치 않은 목소리의 주인공인 그는 자신을 "계속 공부하는 성악가"라고 낮췄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에서 꾸준히 보내는 러브콜을 더 이상 모른 체할 수도 없다.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서양식 이름으로 고칠 것을 은근히 종용받는다고도 했다. 조용히 공부할 팔자는 못 된다.
_ 이번 공연에서 '소프라노와 트럼펫을 위한 칸타타'를 선곡했는데.
"기교가 강조되는 곡이기 때문이다. 우렁찬 트럼펫과 소프라노가 현란한 스케일로 화답하는 그 곡을 통해 바로크 음악의 화려함을 느껴보시라."
_ 한국의 클래식 시장은 여전히 공통관습시대(고전, 낭만주의)의 작품이 지배적이다. 그것을 비껴나듯 바로크 아니면 현대음악으로 세계 무대에 서는 당신의 행보가 인상적이다.
"서울대 음대 졸업 후 2000년 서베를린대에 입학, 3년 뒤 카운터 테너이자 지휘자인 르네 야콥스의 공개 레슨 에 참여해 바로크 음악의 진수를 체감했다. 학생 신분임에도 그날 즉시 헨델 의 '리날도' 중 요정 역으로 캐스팅됐다."
_ 본격적인 공부는 어떻게 했나.
"고음악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스위스 바젤의 스콜라 칸토룸 바젤리엔시스에서 바이브레이션, 장식음 구성법, 중세 기보법, 쳄발로 등 바로크 음악의 실제를 공부했다. 피아노를 오래 해서 절대음감이 확실하다는 점이 현대음악 하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_ 한국에 있었다면 가능했겠나.
"사실 유럽서도 고음악은 전공자 아니면 배우기 힘들다. '오르페오' 등 실제 무대에 서면서 본격적으로 공부할 욕심이 생긴 셈이다."
_ 현대음악 공부는.
"2003년 1월 베를린 필과 함께 마티아스 핀처의 'With Lilies White'를 유럽 초연, 현대음악 연주자로 공식 데뷔했다. 앞서 2001년 베를린방송합창단의 객원 단원 오디션에서는 학생 신분임에도 65세 정년의 정식 단원 제안을 받는 등 파격적 대우를 하더라. 리게티의 '모테트', 헨체의 '교향곡 9번' 등을 불레즈 등 쟁쟁한 지휘자들과 실전 무대를 통해 공부했다."
_ 최근 세계적 클래식 매니지먼트사 IMG에 전속돼 또 화제가 됐다.
"지난 1월 1일 부로 전속 신분이 됐다. 지난해 5월 뉴욕 링컨센터에서 불레즈가 창단한 현대음악 앙상블과 함께 리게티의 '죽음의 미스터리'와 진은숙의 '말의 유희'를 불렀는데, IMG측이 현장에서 봤다더라. 지난해 11월 바젤에서는 오케스트라 반주로 독일 작곡가 볼프강 림이 지은 '모노드라마 오페라' 중 40분짜리 '아드리아네'를 독창했다. 10대 소녀에서 90대 노파까지를 함께 연기해 호평받은 이 무대 직후 IMG측에서 같이 일하자고 본격 제의가 왔다."
_ 고전과 낭만에 집중돼 있는 국내 음악팬들의 취향을 의도적으로 비껴나려 한 건가.
"아니다. 섭외가 계속 그런 식으로 들어온 결과다. 그러나 결국 나와 맞다. 나는 '아카데믹한 고행'을 즐긴다. 나를 좋아하게 되면 나의 브람스도 듣고 싶어질 것이다."
_ 한국의 현대음악과 맺어온 인연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음악 전통에 대한 생각은.
"2005년 한국이 주빈국이었던 프랑크푸트 국제도서전에서 윤이상의 '밤이여, 나뉘어라'를 불렀던 게 본격 출발이었다. 윤이상과 진은숙의 작품 중 목청 꺾기 등 국악적 요소에 주목한다. 현대음악은 그처럼 내게 문제의식을 요구한다. 앞으로는 한국서의 무대를 통해 다양한 레퍼토리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다. 현대 예술이 동시에 던지는 기대의 배반과 충족을 즐겨 달라."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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